[프롤로그]

Chapter.0 프롤로그

세상에는 어이없는 죽음이 참 많다. 복상사나 복하사가 가장 큰 예이고, 그 외에도 레고 밟고 죽기나 뱀으로 줄넘기를 하다가 뱀에 물려죽기, 공짜 음료수를 마시기 위해 자판기를 흔들다가 자판기에 깔려죽기가 있다.

그리고 지금의 나도 그 반열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리게 된 것 같다.

나는 가만히 내 몸을 내려다보았다. 단순히 고개를 숙여 내 가슴에서부터 발까지 봤다는, 그런 간단한 얘기가 아니다. 나는 내 몸 옆에 서서,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내 몸을 보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 난 죽었다. 22살, 한창 청춘을 즐기고 있는 젊고 창창한 나이에! 욕실에서 씻은 후 물을 잠그려다가! 물과 아직 남아있는 미끄러운 거품들 때문에 뒤로 넘어져서! 그대로 뒤통수는 박고! ...죽어버렸다.

나는 무미건조한 눈으로 욕실 바닥을 쳐다보았다. 시체에서 흘러나온 피가 반쯤 잠기다 만 샤워기 탓에 물과 섞여 배수구로 흘러들어간다. 붉은색 색소를 탄 듯 연한 분홍빛 물이 조금씩 진한 색을 내며 한 곳으로 흘러가는 꼴을 보자니 뭔가 착잡해졌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머리가 아파오는 듯 해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가 앞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러다 문득 뽀얗던 피부가 창백해져가는 시체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발끝에서부터 눈으로 쭉 훑다가, 곧 얼굴에서 시선이 멈춘다 막 씻고 나와 촉촉하게 젖은 검은 머리칼이 하얀 볼에 달라붙어있다. 입술은 비록 아까보다는 아니지만 장미의 꽃잎처럼 붉었다. 코는 오똑하니 높게 솟아있고 눈은 감고 있긴 하지만 언제나 빛을 발하는 외모에는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왼쪽 눈가에 찍힌 점은 누가 보더라도 나 차밍 포인트요! 라고 외치고 있다. 이목구비는 전체적으로 오밀조밀 모여있어 균형감과 아름다움을 함께 주었다.

하, 이 완벽한 얼굴. 누구 시체인지 참 잘생겼네.

아참, 이 시체 주인이 바로 나였지.

[ . . . . ]

아아악! 아아아아악! 쪽팔려!

이게 대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이 내가! 이 내가 욕실 바닥에 대大 자로 엎어져서 -정확히 말해 대 자로 엎어진 건 아니다. 샤워 부스의 공간은 한 사람이 들어가면 양쪽 공간이 조금 비는 정도다- 죽다니!

차라리 볼일을 본 후 손을 씻다가 미끄러져서 죽은 거였으면 그래, 이게 그나마 낫지.

내가 더 쪽팔리는 것은 사인死因도 사인이지만 현재 내 시체가 알몸이라는 것이다. 영혼 상태의 나는 무슨 메커니즘인지 평소에 자주 입던 옷을 입고 있지만, 뭐,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현재 내가 죽은지 체감상 약 10분이 지났다. 욕실에 들어왔던 게 지금으로부터 25분쯤 전이었으니 이미 평소의 샤워 시간으로부터 5분가량 지난 셈이다. 내가 욕실에 너무 오래 있으면 가족들 중 적어도 한 명은 이곳에 들어와보겠지. 혹은 고용인 중 한 명이거나.

걱정스레 내 이름을 부르며 욕실 문을 연 순간 내 시체를 본 그들의 표정을 상상해보라. 처음엔 시체라는 점에 경악, 그 다음엔 내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가까이 다가와 내 아름다운 몸을 샅샅이 살펴보겠지. 실오라기, 수건 하나 걸치지 않아 완전히 자연의 상태-알몸인 채로 굳어가는 내 몸을 말이다.

장례식, 내 영정 사진 앞에 서서 우는 가족들의 모습이 눈 앞에 저절로 그려진다. 드물게 침통한 표정으로 굳은 표정의 아버지와 이미 실신해서 실려나간 심약한 어머니, 왜 하필 그렇게.... 그렇게 알몸으로..... 라고 중얼거리며 손수건을 씹을 듯이 잡은 채 울먹이는 누나, 씁쓸한 표정으로 주먹을 꽉 쥔 채 내 영정 사진을 아련하게 바라보는 형. 그리고.

장례식에 조문을 왔다가 -혹은 그 전부터- 내 사인에 대해 알고 수근거리는 지인들. 어머어머 이 집 작은 아들이 글쎄, 욕실에서 미끄러져서 머리가 깨져 죽었다면서요? 글쎄요 그게, 알몸으로 죽었대요. 어머나 남사스러워라.

. . . . . .

[으허어어엉 상상만 해도 쪽팔려어어어- 쪽팔려어어어어-]

나는 양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을 듯이 쥐고 헤드뱅잉을 했다. 원래라면 다른 사람들에게 추태를 보일 수 없다며 평소의 고상하고 고고한 이미지를 계속 고수했겠지만 지금 상황에선 알 게 뭔가. 어차피 난 유령이고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날 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텐데!

[쪽팔려어어어어 왜 하필 이런 죽음이냐고오오오오오]

신이란 놈이 있다면 멱살 한 번 잡고 짤짤 흔들어주고 싶었다. 하고 많은 죽음 중에 왜 하필! 이런 쪽팔리는 죽음을!

아니 그리고 죽었는데 왜 영혼이 그대로 남아 유령이 된단 말인가. 바로 다른 사람으로 환생하거나 죽는 순간 소멸하거나 했으면 내가 이렇게 쪽팔림을 느낄 일은 없었을텐데!

아무리 나라지만 막 그렇게 찬란하고 멋있는, 소위 말하는 숭고한 죽음을 바란 건 아니었다. 죽음까지 그렇게 완벽하면 나는 존재 자체가 완벽한 -사실 진짜로 그렇지만- , 세상 모든 한심한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는 인물이 되었을테니까. 음, 죽음이라면 교통사고같은 불의의 사고로 인한 사고사였어도 괜찮다. 어떤 미친놈에게 살해당했어도 그 미친놈을 두고두고 씹고 저주할 일이지 쪽팔리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 어떤 죽음이었든 적어도 이렇게 쪽팔리지는 않을 거란 생각이든다.

자살하고 싶다. 지나치게 극단적인 생각일지도 모르나 지금의 나에겐 차라리 자살이 나았다. 하지만 못한다. 난 이미 죽었으니까.

[나 왜 죽은 거냐고오오오오 나 자살할테니까 다시 살려내 빨리이이이이이이]

분을 못 이겨서 벽이라도 쿵쿵 치고 싶어 손을 휘둘렀으나 손은 벽을 통과하여 허공만 열심히 저을 뿐이었다. 그것에 열이 받아 또 한 번 머리를 쥐어잡으며 괴성을 질렀다.

[......]

그렇게 몸부림치고 쪽팔려하기를 몇 분일까. 난 다시 평소와 같이 침착해졌다. 이미 죽은 건 죽은 거고, 내 시체가 이 모양인 건 여전히 쪽팔리지만 바꿀 수 없다. 적어도 유령 상태의 나는 옷을 입고 있으니 괜찮지 않은가.

[괜찮긴 개뿔]

하아아, 한숨이 나온다. 신이 있다면 대답해주기를. 왜 저에게 이런 쪽팔린 죽음을 주셨나요. 당신께서도 제 잘생김과 아름다움과 멋짐과 완벽함을 질투하셨습니까? 만약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질투해도 좋으니 저 좀 다시 살려주시죠.

당연한 일이지만 대답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하아아아아, 아까보다 깊은 한숨이 나왔다. 화내는 것도 질려서 그만두니 마음이 가라앉는 반면 몸이 붕 뜨는 느낌이다.

아니, 진짜로 떠있었다. 헬륨을 넣은 풍선처럼, 내 몸은 허공에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나는 적당히 허공에 몸을 누이곤 한숨을 뱉었다. 그러고보니 죽음을 수용하는 5단계가 있다는 걸 어떤 서적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첫번째가 부정Denial, 두번째가 분노Anger, 세번째가 타협Bargaining, 그 다음이 우울Depression, 마지막이 수용Acceptance이었던가. 그래봤자 이 이론은 경험적 판단도 없고 표본 조사도 공평하지 않아 입증되기 힘든 엉터리 이론에 불가하지만.

쓰잘데기없는 이론을 씹어대며 나는 그렇게 한참을 시간을 보냈다. 아직도 샤워기에서 떨어지고 있는 가는 물줄기가 내 물줄기와 바닥에 부딪혀 살짝 튀어오르는 물방울들이 나에게 닿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했다. 적당히 따뜻한 물을 계속 맞은 탓에 죽은지 꽤 시간이 지난 내 시체엔 아직도 조금이나마 혈색같은 것이 돌고 있었다.

거울이 아닌 완전히 다른 시점에서 나를 보는 것은 처음이라, 나는 허공에 둥둥 떠있는 것을 멈추고 나-내 시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아까도 생각한 거지만, 그리고 그 전에도 몇 십 몇 백 번이고 생각한 거지만, 난 정말로 완벽하게 잘 생긴 것 같다.

하, 새삼스럽게 내 얼굴을 보며 감탄하고 있는데 때마침 욕실 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

"해준아, 너 지금 안에 있지? 너무 오래 있는 거 아니야? 너 욕실 들어간지 벌써 40분이나 됐어. 오래 씻으면 안 좋아."

누나의 목소리다. 첫 발견자는 누나가 되는 건가. 흐음. 어머니를 닮아 여린 겉모습과 다르게 학창 시절에 자신과 친구들에게 건방지게 구는 녀석들을 슬리퍼로 패고 다녔던 누나니까 아마 괜찮겠지. 어떨 땐 형보다 더 멋있는 모습을 보여줄 때가 많았고.

"해준아. 해준아?"

노크 소리가 좀 더 커졌다. 목소리에 의아함을 담고 있는 것이, 대답이 없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려했다. 어머니에게서 유일하게 물려받은 외모와 두뇌에 이어 걱정 유전자가 고개를 치켜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해준아, 누나 들어간다."

애가 쓰러졌으면 어떡하지. 그러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섞인 목소리다. 아마 한 손엔 이미 핸드폰에 119를 누른 채일 것이다. 씻을 때 문을 잠그는 편이 아니기에 -가족과 고용인들도 당연히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내가 내 방 욕실에서 씻을 때는 아무도 내 방에 접근하지 않는다- 문고리가 서스럼없이 움직이며 욕실로 통하는 길을 열었다.

[안녕, 누나]

"....해준아? .......해준아?"

[혹시 소리 지르기 전에 내 몸에 옷 좀 입혀줄 수는 없을까? 하다못해 가운이라ㄷ...]

"해준아!! 해준아!!! 세상에, 해준아, 정신차려!!! 해준아!!!!"

[그래, 들릴 리가 없겠지]

그래도 들어줬으면 했어. 나는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둥실 뜬 채 샤워 부스에서 비켜섰다. 양말을 신은 채로 거리낌없이 물로 가득한 욕실 바닥을 철퍽거리며 걸어온 누나가 나를, 내 시체를 확인했다. 따뜻한 물이 닿지 않은 발쪽이 차갑게 굳어있는 것을 확인한 누나가 희게 질렸다.

"해준아!!! 해준아!!!!"

"무슨 일이야!!"

누나의 다음은 형이었다. 형은 욕실에 쓰러져있는 나와 아직도 하수구로 흘러가고 있는 연분홍색 액체, 그리고 내 옆에 무릎을 꿇은 채 샤워기에 나오는 물을 맞고 있는 -솔직히 이때 샤워기를 잠가주고 싶었다- 누나를 보고는 딱딱하게 굳었다.

[어, 왔어? 그럼 내 시체에 저기 걸린 목욕 가운 좀 입혀줄래?]

"해룬아, 해준이가....."

"......해, 준아?"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야!! 왜들 소리를 지르고 그래!!!"

"해문아, 해룬아! 혹시 해준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니?!"

네네, 다음 분들. 결국 난 온 가족에게 알몸인 상태로 죽어있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다.

[.....쪽팔려....]

그리고 난 온 가족이 내 시체를 둘러싸고 울음을 터트리는 한 가운데에서 양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조용히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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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4-30 01:07 | 조회 : 1,365 목록
작가의 말
이노파코

일단 질러놓고 보는 소설입니다.... 미래의 제가 언젠간 써주겠죠 허허헣 / 개그 스토리 위주에 자유 연재입니다. 프롤로그가 처음이자 마지막 많은 분량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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