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Chapter.1 계약을 할 때는 조건을 꼼꼼히 (1)

내가 내 장례식에 참석하는 건 생각보다는 덜 새로웠다. 이미 몇 번이나 생각해본 거라 그런가. 그래도 예상 밖인 동시에 다행이었던 것은 내 사인死因을 공공연한 비밀로 취급해주고 언급하지 않아주는 것이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아주. 예.

장례식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다. 일 때문에 깊게 연관된 사람들도 있었고, 가볍게 얼굴만 몇 번 마주한 사람도 있었고, 아예 처음 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나 확실한 건 그 모든 사람들의 얼굴엔 깊은 수심과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다.

후, 그래. 역시 나같은 천재를 일찍 잃는다는 건 슬픈 일이지.

조문을 오는 사람의 숫자를 세는 것도 귀찮아져서-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재미없어져서- 나는 공중에 둥둥 뜬 채로 영정사진 앞에 서있는 누나와 형을 보았다. 아버지는 방문객을 맞이하고 계셨고, 어머니는 내가 죽은 충격으로 며칠째 깨어났다가 기절하는 것을 반복하고 있어 이 자리엔 계시지 않았다.

거참, 사람은 언젠가 죽기 마련인데 말이지. 물론 내가 일찍 죽은 감이 있긴 하지만.

내 영정사진 앞에서 누나는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악물고 있었고, 형은 공허한 눈으로 사진을 보며 옆에 선 누나의 등을 도닥여주고 있었다. 마음같아선 나 지금 누나랑 형 곁에 잘 있다고 광고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유령이라서 포기했다.

저렇게 우는 걸 보고 있자니 아무리 나라도 마음이 무거워지려고 하네. 누나는 웃는 얼굴로 내 등짝을 때리는 게 어울리고 형은 나에게 걱정어린 썩은 미소를 짓는 게 잘 어울렸는데. 내 죽음이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게 조금은 신기하기도 했다. 그마저도 몇 시간이 지나니 질려버렸지만.

방문객들의 수는 여전히 줄지 않고 있고 누나와 형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서자 나는 지루함에 하품을 했다. 내 얼굴이나 볼까 싶어도 유령인 상태론 거울은 커녕 유리에 내 모습이 비춰지지 않아서 내 영정사진을 보았다. 액자 안에는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예쁘장하게 잘생긴 아름다운 미남이 당당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역시 잘생기고 완벽한 내 얼굴. 이런 얼굴이 일찍 죽었다는 건 세상에 큰 죄다. 만약 저승에 가서 재판을 치르게 된다면 내 죄는 '그 얼굴과 능력을 가지고 일찍 죽은 죄'겠지. 하, 언제나 완벽한 나.

저승이라는 말이 나와서 든 생각인데, 저승사자는 실재하는 건가? 내가 죽은지도 어언 사흘째. 저승사자의 옷자락은 커녕 머리카락 한 올도 보지 못했다. 같은 유령은 몇 만나서 인사를 건네봤는데 기겁하며 도망치더라. 내 얼굴에 놀란 게 틀림없겠지. 이렇게 잘난 사람의 얼굴을 실제로 처음 보는 사람의 마음을 미리 이해해줬어야 했는데. 배려가 조금 부족했다는 거에 잠깐 반성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나저나 진짜 드럽게 할 거 없네]

오죽 지루하면 이런 말을 밖으로 내뱉기까지 하겠냐. 나는 지금 몰려오는 따분함과 지루함에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평소라면 일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프로그램을 만들거나 아무튼 뭐라도 했을텐데 죽으니까 뭔가를 만질 수도 없고, 정말 할 일이 없었다. 내 가설에 의하면 평소 내 일상의 1/3 이상을 차지하던 '거울에 비친 완벽한 내 모습 보기'가 없어진 게 큰 이유 같았다. 왜 유령은 거울에 비치지 않는 건지. 아아, 지루해. 아아, 따분해. 뭐 재밌는 일 없나. 저승사자라도 한 마리 안 지나가나.

나는 바깥쪽 벽에 머리를 쑥 집어넣었다. 이것도 처음에나 재밌었지 하루 지나니까 슬슬 질리더라. 심심할 땐 가끔 했지만. 이물감없이 벽 반대편으로 나오곤 여전히 변함없는 풍경에 하품을 했다. 후아암. 문득 시선이 느껴져 -나같이 사람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으며 자란 사람은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눈동자를 아래로 내리니 검은색 눈동자와 마주쳤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눈이 마주친 누군가를 위아래로 훑었다. 적갈색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어깨 바로 아래까지 기르고 왼쪽 눈에서부터 볼까지 검은색의 이상한 문양이 있는, 무엇보다 검은색 갓에 두루마기를 착용한, 흔히 말하는 명부를 손에 쥐고 있는 남자였다.

[뭐야, 저승사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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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06 20:38 | 조회 : 1,198 목록
작가의 말
이노파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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