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Chapter.1 계약을 할 때는 조건을 꼼꼼히 (2)

저승사자로 보이는 누군가는 -내가 보이는 걸 보면 적어도 살아있는 사람은 아니겠지- 갑자기 벽에서 튀어나온 내 머리를 보고 놀란 듯 눈을 깜빡거렸다. 후, 그래. 그 누구도 벽에서 이렇게 잘생긴 얼굴이 튀어나올 줄은 몰랐겠지. 저승사자도 놀랄만 하다. 나는 머리만 내놨던 벽에서 스르르 나와 저승사자의 앞에 똑바로 섰다. 와, 키 존나 커. 공중에 떠있을 땐 몰랐는데, 저승사자는 그럭저럭 평균은 넘는 -아마 더 크면 너무 완벽해져서 세상에 불균형을 일으킬 수 있기에 신이 일부러 적당히 준 게 틀림없는- 키에 속하는 175cm인 내가 고개를 꺾듯이 올려다봐야 하는 키였다.

[저승사자 맞지?]

[...어? 응. 그런데?]

이야, 목소리 좋네. 얼굴도 제법 반반하고. 물론 나만큼은 아니지만. 내가 나름대로 후한 평을 내려주고 있는데 저승사자는 어째 떨떠름한 눈치였다. 그러면서도 내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는다. 그래, 나같은 미인을 영접할 기회가 흔한 건 아니지. 실컷 봐라. 나는 내 할 일을 할테니. 나는 손을 뻗어 저승사자의 옷소매를 덥썩 잡았다. 움칫하며 뒤로 한 발을 내딛는 저승사자의 기척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야]

[응?]

[나 사인 좀 바꿔줘]

[...뭐?]

저승사자의 한쪽 눈썹이 찌푸려졌다. 나도 한쪽 눈썹을 찌푸렸다.

[못해?]

그정도 능력도 없어? 그런 속내를 담고 말하니 저승사자의 얼굴에 황당함이 담긴다. 그러다가 곧 지겹다는 듯이 혀를 한 번 차고는 뻔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사자死者의 신분으로 저승차사에게 사자생환을 요구하는 거냐?]

[부활시켜달라고 하는 거냐고?]

[그래.]

[아닌데?]

[?]

[다시 살아나봤자 뭐해? 지루한 건 비슷할텐데]

[?]

[...?]

[?]

[?]

서로 몇 분간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말귀 한 번 드럽게 못 알아듣네. 먼저 말을 꺼낸 건 나였다.

[난 그냥 내 사인만 바꿔달라는 건데, 못 하냐?]

[사자생환이 아니라 사인 수정이라.... 으음. 아무튼 못해.]

[왜?]

[왜냐니....]

저승사자는 할 말을 잃은 듯 말을 잇지 못하고 칠흑같이 검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뭐, 왜, 뭐. 눈알을 찔러버릴라.

[야, 생각을 좀 해봐, 나처럼 완벽한 사람의 사인이 그따구면 세상에게 실례 아니겠냐고, 쪽팔려서 정말]

[네 사인이 뭔데?]

[알려주면 고쳐줄 거야?]

[못한다니까.]

[능력없네]

이번엔 내가 혀를 쯧 찼다. 기껏 만난 저승사자가 이런 녀석일 줄은.....

표정에서 생각이 드러났는지 저승사자 녀석이 욱한다.

[능력 있거든?]

[아 그래? 그럼 내 사인 좀 바꿔줘보든가]

[하아, 그건 규율에 어긋나서 못 들어줘. 내가 염라대왕도 아니고.]

[그럼 염라대왕은 바꿀 수 있어?]

[인과율에 어긋나지 않는 한에서 사람을 되살리는 것도 가능하지.]

[그건 관심 없다니까, 그럼 부탁하면 사인도 바꿔주나?]

[글쎄.... 깐깐하신 분이라.]

[이 외모로 부탁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

턱에 손으로 꽃받침을 해보이며 말하니 저승사자 녀석이 말을 잃었다. 틀림없이 말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공감하고 있는 거겠지. 다 안다. 나의 아름다움이란.... 크으.

[흐음.....]

[뭐, 뭔데, 뭐, 왜]

턱을 손으로 집고 아까 벽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의 나처럼 나를 위아래를 훑어보는 게 같잖아서 따지듯이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얼굴을 불쑥 들이밀어온다. 아이 씨..... 나만큼은 아니지만 잘생겼네. 나처럼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잘생김이 아닌 그냥 얼굴에 잘생김이라고 궁서체로 써놓고 다니는 듯한 잘생김이었다. 그래도 내가 더 잘생겼어.

[신입 영혼이 염라대왕께 청탁을, 그것도 이승에 있었을 시절의 일의 수정에 대한 청탁을 넣으려면 엄청난 경력이 필요하거든.]

[경력? 괜찮네, 나 그거 많아]

[이승에서의 경력 말고 저승에서의 경력 말이야. 물론 이승의 것이 저승에 그대로 누적되긴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넌.... 글쎄, 한 10년? 20년? 정도 걸리려나?]

저게 지금 뭐라는 거지? 난 되도록 '네가 지금 지껄이고 있는 말이 매우 꼽다'는 마음을 담아 쳐다봐주었다. 그런데 이 녀석은 이런 시선을 너무 많이 맞아서 무감각해진 건지 능청스레 마주 바라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어쩌면 더 오래 걸릴지도 모르지. 그런 의미에서 제안 하나 할게.]

[뭔데]

[나랑 계약해서 나를 염라의 자리에 오르게 해주면, 그때 내가 네 사인을 수정해줄게.]

어때? 저승사자 녀석이 손을 척 내밀었다. 나는 귀 후비는 시늉을 했다. 죽은 이후 처음 만난 저승사자는 개소리를 뜬끔없이 신명나게 잘 하는 녀석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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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5-07 00:48 | 조회 : 1,285 목록
작가의 말
이노파코

글연습용으로 쓰는 거라 분량은 짧고 아무말 대잔치에 스토리 전개도 느릴 것 같습니다....허헣 / 저승사자공, 잘생김그자체공, 능력공, 강하공 / 중증나르시시스트수, 존잘존예수, 능력수, 천재수 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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