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속의 작은 정


"……아,아…"

니게르는 다 쉬어버린 목소리로 인상을 찡그렸다. 깨끗해진 침대를 바라보던 니게르는 보드라운 이불에 몸을 파묻고는 눈을 감았다. 그때, 창문 밖에서 검은 날개가 언듯이 비춰보였다.

똑, 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니게르는 침대에서 벗어나 창문을 열었다. 굳이 누구인지 확인할 필요도 없을 만큼 익숙한 검은 날개가 방 안쪽으로 들어왔다.

"…."

"니게르, 보고싶었어."

아르드와즈는 니게르를 품에 안았다. 그의 보랏빛 눈동자에는 광기가 서려 있었다. 무슨 짓을 하든, 가지고 말리라는.

"….."

니게르는 아르드와즈를 밀어냈다. 그는 순순히 니게르에게서 떨어져 나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왜 왔어."

높낮이 없는 말이 니게르의 입속에서 튀어나왔다. 그것이 물음이라는 것을 아르드와즈는 질릴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정말, 질릴정도로.

"보고싶어서."

"….."

니게르는 아르드와즈를 바라보더니 창문에 손을 대고 머리를 기댔다. 니게르의 눈동자만이 그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 알았어. 거짓말 안할께. 시안을 너한테 줄려고."

니게르는 잠시 그를 바라보더니 중얼거렸다.

"시안."

"왜불러요?"

갈색 머리를 가진 강아지상의 남자가 툭 튀어나왔다. 여전히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다정해 보이는 갈색 눈동자를 바라보던 니게르는 고개를 기울였다.

"….좋아하잖아."

니게르는 이해할수 없다는 듯이 시안을 바라보았다. 아르드와즈는 침대에 걸터앉아 그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주인 명령인데 일개 하인인 저는 어찌하렵니까."

시안은 웃으며 말했다.

"…."

니게르는 아르드와즈를 살짝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허락한거야? 자, 이건 시안의 계약서야."

노예 계약서를 건넨 아르드와즈는 창문을 열었다. 검고 매끈한 날개가 달을 가르며 뻗어나왔다.

"시안을 잘부탁해?"

아르드와즈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니게르는 계약서를 보다가 시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시안은 니게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잘부탁해, 주인님♡"

니게르는 양초의 불에 계약서를 가져다 대었다. 계약서는 불에 타 사라졌다. 날아가는 재를 바라보던 시안은 손등에 새겨진 노예의 문장이 사라진 것을 보곤 웃음지었다.

"역시 자기라면 이럴줄 알았다니까♡"

니게르는 달라붙는 시안에게 말 없이 안기며 그를 쳐다보았다.

"걱정마, 자기. 한동안은 자기를 따라다니면서 지켜줄께♡"

시안은 니게르의 볼에 작게 입을 맞췄다. 니게르는 그런 시안을 바라보다가 창문을 닫았다. 닫힌 창문에 바람이 부딫혀 꽤나 흉흉한 소리를 만들어 냈다.

일정한 박자를 타고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니게르가 시안을 바라보니, 시안은 금방 시야에서 사라졌다. 문이 열리자, 니게르는 고개를 돌려 문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모습이 보였다.

***

"그래서, 우리 가문과 동맹을 맺고 싶다는 건가?"

"그럼요. 맺으면 서로 좋지 않겠습니까?"

가주, 카민은 웃으며 앉아있었다. 반대편에는 다 샌듯한 흰머리를 가진 남자가 있었다. 기이한 빛을 내는 보랏빛 눈동자와, 뾰족한 송곳니가 돋보였다. 그런 남자의 곁에는 니게르가 앉아 있었다.

"우리에게 어떤 이득이 있지?"

"하하, 입에 다 올리지 못할만큼의 이득 아니겠습니까."

카민은 종이 몇 장을 내밀었다. 그것들을 대충 훝어보는 남자의 손길이 니게르의 둔부에 닿았다. 살짝 몸이 움찔거렸지만, 그 이상의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검은색의 눈동자가 빛을 잃어갔다.

"어떠십니까?"

"좋군. 오늘은 여기서 지내도 괜찮겠지?"

"물론이죠. 니게르, 안내해 드려라."

"네."

카민의 말에 남자가 일어서자, 니게르가 따라 일어섰다. 니게르는 넓은 방으로 남자를 안내했다.

"저자 말고 나를 따라오는 것은 어떤가."

"죄송합니다. 전 한낯 변종일 뿐입니다."

니게르는 고개를 숙였다. 자신을 훝어내리는 기분 나쁜 눈동자를 지금이라도 헤집어 놓고 싶었지만, 그래, 니게르에게는 그럴만한 힘도, 그 뒤의 일을 책임질만한 돈도 권력도 없었다.

"그럼 하룻밤 정도는 같이 보내도록 하지."

니게르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저 남자가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니게르는 몸을 팔아야 했으므로, 니게르에겐 그닥 상관 없는 말이었다.

"잘부탁드립니다."

니게르는 침대에 눕혀지는 자신의 몸을 느꼈다. 이미 늦은 밤이니까 그래도 상관은 없었지만. 니게르는 자신의 몸을 더듬는 손길에.인상을 찌푸렸다.

곧이어 니게르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다분히 작위적인, 오직 상대의 취향에 맞춘 신음소리가 입술을 뚫고 나온다. 니게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뜨며 자신의 위에서 흔들리는 남자의 몸을 바라보았다.

밑에서 느껴지는 둔탁한 통증은 전혀 기분좋지 않았지만, 니게르는 언제나 그렇듯 쾌감에 눅진눅진 하다 못해 절여진 얼굴을 하곤 남자의 귓가에 조용히 사랑을 속삭였다.

온갖 거짓부렁이를 말하는 입이 이리도 달콤한 사랑을 뱉어낸다는 사실이 니게르에게 신기할 뿐이었다. 이내 안에서 무언가 확 퍼지는 느낌과 함께, 니게르는 완전히 정신을 놓았다.

맑은 햇살이 들어와 니게르는 살그머니 눈을 떳다. 차디 찬 침대 위에서 일어난 니게르는 몸을 씻고 침대를 정리했다.

"주인님."

키이로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키이로는 니게르가 그저 좋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맛있는 밥을 먹었다는 것 밖에 알지 못했기에, 그의 작은 주인이 기쁠것이라고 생각했다. 니게르는 그런 그의 멍청함을 사랑했다. 그는 실로 완벽한 친구가 아닌가.

"가시겠습니까?"

니게르는 아픈 허리를 두드리곤 키이로의 손을 맞잡았다. 따뜻한 온기와 단단하게 굳은살이 박힌 손바닥이 고스란리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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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03 21:55 | 조회 : 1,376 목록
작가의 말
11月

앞으로도 미래와 과거가 같이 나올듯 합니다. 큰 사건 몇개가 끝나면 과거는.자연스레 사라지겠지만요. 물론 그 뒤에도 다른 아이들의 과거가 남아.있습니다(작가는 60화내로 끝내려고 했다는 사실을 까먹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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