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아무것도 아닐텐데도

니게르는 말끔한 목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하얀 목덜미를 더듬는 얇은 손가락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목에 이빨이 박혀드는 감각은 빈말로도 좋다고는 못했다.

"니게르."

어두운 방의 문이 열렸다. 니게르의 발목에 채워진 족쇄를 바라보던 아르드와즈는 인상을 찌푸렸다.

"흐음, 아버지께 부탁드려야 겠네."

"주인님."

아르드와즈의 뒤에서 키이로가 걸어나왔다. 키이로는 아르드와즈를 슬쩍 흘껴보더니 니게르를 일으켰다. 키이로는 품 안에서 열쇠를 꺼내 족쇄를 풀었다.

니게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나갔다. 아르드와즈는 그런 니게르의 앞을 막아 섰다.

"오늘은 나랑만 있을꺼야."

아르드와즈의 말에 니게르의 귀가 까닥거렸다. 그 모습을 본 아르드와즈는 설핏 웃었다. 그런 그의 눈에 가득 차다 못해 넘쳐 흘러내리는 애정을 느낀 니게르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왜?"

"내가 아버님께 부탁드렸으니까."

"가야 해. 비켜."

니게르는 아르드와즈를 지나쳤지만, 다시 막힐수밖에 없었다.

"니게르."

"형?"

네그로는 싱긋이 웃으며 니게르를 내려다보았다.

"아버지가 아르드와즈랑 놀라고 했어. 잘됬다, 그지?"

네그로는 니게르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니게르의 시선이 무언갈 고민하듯 살짝 내려간 사이, 네그로는 아르드와즈에게 살짝 고개를 숙였다.

"..…응. 그럼 안가도 돼?"

"그럼. 아르드와즈랑 같이 있어."

네그로는 니게르의 머리를 헤집고는 걸어갔다. 니게르의 시선이 아르드와즈를 향했다.

"설명해."

"말 그대로야. 내가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고, 너도 알다시피 너네 아버진 우리 아버지한테 거절할만한 명분이 없을테니까 그 부탁을 받아주신 거지."

니게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적어도 오늘은 맞지 않고, 되도 않는 말을 듣지 않아도 됬으며, 성적인 행위들도 당하지 않을테니. 물론 아르드와즈의, 누가 봐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어요.' 라는 의미의 눈동자를 마주본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 될터 였지만.

그래, 어차피 니게르에겐 선택권도 없었다. 언제부터 자신에게 '선택' 이라는 좋은 것이 있었는가.

"우리 밖으로 나갈까?"

아르드와즈는 니게르의 손목을 살짝 잡고는 이끌었다. '밖' 이라는 말에 니게르의 몸이 움찔 떨렸다. 연회장을 몇 번 들른것 빼곤 바깥 구경을 해본적 없는 니게르의 눈이 일순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키이로는 살짝 걱정스럽다는 듯이 니게르를 바라보다가 그의 눈동자를 보곤 말리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지금 말려버리면 자 눈동자가 꺼멓게 죽는 것을 보고 있어야 할테니까. 키이로는, 그 눈동자가 너무나도 싫었다. 마치 생명이 없어보이는 죽은 눈동자.

"가자."

정문 앞에 선 아르드와즈가 니게르의 손을 조금 더 잡아당겼다. 노예이기에 니게르를 따라 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키이로에게 손을 흔든 니게르는 밖으로 걸어갔다.

"가고 싶은곳 있어?"

이르드와즈의 보랏빛 눈동자에서 진한 애정이 흘러나왔다. 목소리는 다정다감 했고, 그의 행동은 그 누구보다도 니게르를 배려하고 있었다. 니게르는 사랑이 이런 것일까, 라고 생각했다. 그만큼 아르드와즈의 에정은 오직 니게르에게만 바쳐지고 있었다.

"아무때나."

니게르에겐 그것만큼 부담스러운 것도 없었다. 니게르는 사랑은 고사하고, 누군가의 진심된 호의, 아니, 거짓된 호의 조차도 제대로 받아보지 못하였기에, 사랑이라는 것은 그만큼 니게르에겐 무거운 것이었다.

"그럼 시장에 가볼까?"

"….응."

두근거리며 뛰는 심장의 간지러움 대신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느끼고,

"이쪽이야."

"조금만, 천천히…"

"아, 미안. 나만 너무 들떳나봐."

호의에 대한 고마움 대신 혼란을 느끼고,

"이거 잘어울린다."

"그래?"

"응, 그거 선물로 줄까?"

끝도 없이 흘러넘치는 애정에 어쩔줄 모르고 그 애정을 받기만 한다.

"이거 맛있는데, 어때?"

"응, 맛있네."

"그래? 다행이다. 입맛에 안맞으면 어쩔까 걱정했어."

니게르는 아르드와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르드와즈는 니게르와 눈을 마주치는것에서 조차 행복에 겨워 어쩔쭐 모르는 표정을 지었다. 니게르는 이해되지 않았다.

그저 눈을 마주치는 것이, 손과 손끼리 가끔 부딫히는 것이, 서로의 시선이 얽혀들다가 다시 풀리는 것이, 조금씩 나눠지는 약간의 온기가.

그는 그렇게 좋은걸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정말로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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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10 00:07 | 조회 : 1,198 목록
작가의 말
11月

감정선 정리하느라 지각입니다...ㅠㅜ...7분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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