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서, 사랑해서

허리까지 내려오는 기나 긴 하얀색 머리가 바람에 따라 흔들렸다. 머리카락의 끝은 피에 절어 있었지만 소년은 신경쓰지 않았다. 소년은 자신을 향해 찔러들어오는 창의 창대를 잡고 돌렸다. 창의 원래 주인이 창에 찔려 죽었다.

날아오는 화살을 창을 던져 막고 앞에 사람의 검을 집어들어 가슴팍에 꼽는다. 시체에 있는 무기도, 떨어진 무기도 모두 소년의 것이었다. 가장 선두에 선 소년은 적군들을 바라보았다.

가장 많은 시체가 쌓은 곳에서 소년은 환히 웃었다. 소년의 볼이 붉게 상기되고, 금빛 눈동자가 곱게 휘어졌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천사와도 같은 환하고 예쁜 미소였다. 피에 젖은 백발이 흔들렸다.

백색의 소년은 시선을 느꼈다. 슬쩍 시선을 돌리니 창을 든 붉은 소년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색의 소년은 붉은 소년을 보며 웃어보였다.



"….뭐였지."

붉은 늑대의 꼬리가 까닥였다. 소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천사같은 미소로 적군의 가장 큰 두려움이 된 백색의 소년은 자신을 보고 환히 웃었다. 전장에서 그렇게 웃다니, 진정 그것이 기쁜것은 아닐 터.

그러니까 그 소년은,어딘가 결여된것만 같았다. 적어도 심장이 뛰는 생명체라면 다른 이들을 죽이며 그렇게 웃을순 없었다. 하지만 소년은 그런 이들을 많이 봐왔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어딘가 결여된 이들. 백색의 소년은 그들과 많이 닮아있었다.

소년은 밥그릇 하나를 전부 비워냈다. 이제 소년은 이 철장 안에서 가장 강했다. 그렇게 소년은 가문의 일원이 되었다.

"흠, 이번 놈들은 꽤나 괜찮군."

붉디 붉은 머리카락을 짧게 친 남자는 자신의 주변에 널려있는 아이들을 치웠다.

"이들로 할까요?"

"그러지."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소년은 그때가 되서야 이름을 받았다.

***

아카는 몸을 일으켰다. 말소리에 고개를 들어 창가를 쳐다보자, 니게르와 키이로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아카는 살며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자신이 저기에 낄수 있을리가 없잖은가. 니게르가 유일하게 편해지는 시간을, 아카는 차마 빼앗을수 없었다.

"일어나셨군요?"

보고싶지 않은 하얀 머리카락이 아카의 시야로 들어왔다. 바로 인상을 찌푸린 아카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덧붙였다.

"들어가지 마라."

"아, 키이로와 같이 있나 보군요?"

"어. 그러니까 그만 꺼져."

아카는 복도를 걸어갔다. 고요한 복도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듯 했다. 대충 몸을 씻고 나오자 마자 거울과 마주친 아카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몸에 가득한 흉터들을 보던 아카는 고개를 휘저었다.

시로는 싱읏이 웃으며 문을 몇 번 두드렸다. 작은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렸다.

"니게르."

"…?"

"괜찮나요?"

살짝 뜨인 눈 사이로 붉은 눈동자가 사이하게 빛났다. 그의 시선은 정확히 니게르의 목 언저리에 가 있었다. 니게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시로의 손을 잡고 방 안으로 들어왔을 뿐이었다.

약이 한가득 들어있는 상자를 침대에 둔 니게르는 옷을 벗었다. 차마 아물지 못한 상처에 시로는 익숙하게 상자를 열고 소독약 뚜껑을 열었다.

"…."

"아플텐데요. 그렇게 참을 필요 없어요."

입술을 꾹 깨물던 니게르는 슬쩍 시로를 쳐다보다 눈을 돌렸다.

"유난히 저한테만 말이 없는것 같아요. 저 쫌 불상하지 않나요?"

약상자를 원래데로 되돌려 놓은 시로는 니게르의 앞에 한쪽 무릎을 끓고 손에 입을 맞췄다.

"여전히 미안해요."

"…."

"정말로."

"…."

그리고 정말로 사랑랍니다, 시로는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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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21 23:13 | 조회 : 1,199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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