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새장

진한 혈향이 코에 맴돌았다. 손이, 아니, 온 몸이 덜덜 떨려왔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는 일이 처음이 아닌데도, 몇십년간 살을 맞대고 살았다고 미운 정이라도 든걸까. 아니면 피가 이어진 사람이라서 그런건가.

몸의 떨임이 멈추지 않았다. 이젠 그저 고깃덩이에 불과한 덩어리들이 스물스물 뭉쳐 나를 욕하는것만 같았다.

"…아니, 아냐…제발…그만…"

내가 뭘 잘못했는데. 먼저 괴롭힌 네 잘못이잖아. 먼저 때리고, 강간하고, 날 팔아먹었으면서. 이젠 죽어서까지 괴롭히는 거야? 내잘못이 아냐. 아니라고.

"…."

나를 꼭 껴안는 아르드와즈의 품이 느껴졌다. 예민한 귀를 타고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가 우르르 몰려왔다.

"….사람들이 와."

간신히 입을 떼고, 난 잠들듯 눈을 감았다.

***

푹신하고 부드러운 것들이 온 몸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무거운 눈을 살며시 뜨니, 높은 천장이 보였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게 켜진 불에 눈을 찌푸렸다.

"일어나셨나요?"

곱슬거리는 연갈색의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왔다. 흐릿한 초첨에 눈을 비볐다.

"전 시안이라고 해요. 앞으로 당신을 모실 집사랍니다."

무감정한 갈색의 눈동자가 나를 마주보았다. 하이얀 침대에서 일어났다. 얼마나 잔건지, 정신이 멍했다.

"…얼마나 지났어?"

"음, 한 이틀 정도 일껄요."

"…."

이틀동안 잠만 잔 모양이었다. 몸을 일키자, 차르르륵 거리는 익숙한 사슬 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뭐야?"

저절로 얼굴이 굳었다. 발목에는 족쇄가 묶여 있었다. 사슬은 침대 기둥에서부터 이어져 있었다. 시안은 조금 미안한 표정을 짓더니, 나를 침대에 눕혔다.

"니게르님은 이제부터 이 방 안에서만 지내셔야 한답니다."

미안한 표정으로, 밝은 목소리로. 시안은 그렇게 말했다.

"…."

"우리 주인님이요, 당신을 돌보라고 그랬거든요. 배고프시죠? 음식을 내올테니 조금만 기다려요."

시안이 사라졌다. 잠시 멍했던 정신이 퍼뜩 돌아왔다. 마지막 기억이 떠올라 토악질이 올라왔다.

당신한테 복수를 하면, 그렇게 찢어 죽이면 시원할줄 알았다. 복수는 달콤한줄 알았다. 하지만, 이건....

"….아,흑…"

쓰다. 쓰다 못해 혀가 아릿했다. 자몽을 입 안 가득 베어물고 있는 느낌이었다. 당장이라도 혀를 뽑아버리고 싶었다. 그럼 조금이라도 사라지지 않을까.

"….으,흐…"

꾹 깨문 입술에 피가 한, 두방울 떨어져 내렸다. 흰 이불에 붉은 꽃이 피어올랐다. 손을 드니 손톱자국이 늘어섰다. 눈물이 흐르는게 기분나쁘다. 눈이 따가웠다.

왜 우는지 모르겠다. 답답한데. 이 감정이 왜그런지 몰라서 한 없이 답답한데, 왜, 눈물이, 이렇게 까지.

"자, 울지 마시고 고개 들어봐요."

시안이 어느샌가 내 턱을 들어올리고 있었다. 시안은 손수건을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예쁜 얼굴 망가뜨리지 마시고. 입술도 망가 뜨려 놓으셨네. 밥이나 먹어요."

***

"아카 님! 아카 님!"

"뭐."

"그, 이걸….!"

아카는 서류를 펼쳤다. 몇 장의 사진이 떨어졌다. 불타는 집, 검은 날개의 남자. 아카의 얼굴이 팍 찡그려졌다.

"야."

"네, 네?"

"그 검은새끼 집이 어디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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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1-29 21:43 | 조회 : 1,826 목록
작가의 말
11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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