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뻐근한 눈가를 문질렀다. 눈 앞에는 그때의 악마 형상의 어린아이가 있었다. 주위는 온통 검붉었다. 내가 서있는지, 앉아있는지,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 이제 조금 편하네. 안녕, 내 계약자. 난 '불멸' 이라고 해.

입이 열리지 않았다.

- 넌 이제부터 이 아이들과 연결된거야.

검붉은 곳에 시로와 아카가 떠올랐다. 어깨 부근에 붉은 날개 문양이 찍혀 있었다.

- 이 아이들은 먹을걸 먹지 못해. 네 피와 살만이 이 아이들에게 음식인거야. 네가 죽으면 얘네들도 죽어. 아, 성격도 바뀔거야. 어쩌면 아예 다른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

꺄하흫, 하는 이상한 웃음소리가 머리를 통과했다. 불멸은 다시 말을 이어갔다.

- 악몽들이 너를 노릴꺼야. 내 조각을 악몽들이 좋아하니까.

불멸의 몸을 악몽들이 잔득 뒤덮었다.

- 다른 것들도 너를 노릴지도 모르지.

아르드와즈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어 제국의 황제, 누군지 모를 분홍빛 머리의 남자.

- 그래도 너는 내 계약자. 넌 절대 죽지 않아.

불멸의 몸이 가까이 다가왔다. 달콤하고 진득한 향이 가득 풍겨왔다. 그의 입술이 내 이마에 가볍게 닿았다가 떨어졌다.

- 넌 오직 이들의 손에서만 죽을수 있어.

아카와 시로의 얼굴이 찬찬히 떠올랐다가 다시 사라졌다. 입을 열려해도, 입은 열리지 않았다.

- 이게 내가 알려줄수 있는 계약의 끝이야. 뭔가 더 있을수도 있지만.

불멸의 신형이 서서히 사라졌다.

- 날 찾으려면, 가장 깊은 바다로 찾아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겨놓고, 그는 완전히 사라졌다.

"아."

눈이 떠졌다. 베이지색의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몸에는 힘이 하나도 없다. 축 늘어진 몸을 일으키자, 그제서야 목에서 갈증이 느껴졌다. 몸을 일으키니 다리가 덜덜 떨려왔다.

"니게르, 괜찮아?"

카나리아가 물을 건넸다. 마시기 편한 미지근한 물을 마시고 거울 앞에 섰다. 옷의 단추를 몇 개 풀고 어깨를 비춰보였다. 선명한 검붉은 날개 문양이 있었다. 손으로 박박 문질러 봐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거, 너도 있구나."

카나리아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뭔지 알아?"

아직 쉰듯한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___."

속삭이는듯, 조용한 목소리였다.

***

몸을 일으켰다.

"…"

꿈꾸었다.

행복한 꿈을 꾸었다.

환히 웃으며 뛰어놀고,
슬플땐 울고,
화날땐 화내고,
웃을땐 웃는.

평범하고 소소하게 사는 꿈이었다.

내가 가장 원하는 미래였다. 숨이 천천히 차올랐다. 다시 빠져나갔다. 이런 꿈을 꿨을때가, 제일 싫었다. 악몽보다 더한 악몽이었다. 이룰수 없는 행복은, 소망은, 희망은 그런것이었다.

이룰수도 없는데 뭐하러 희망을 주는거야. 어째서 이런걸 보여주는거야. 차라리, 차라리 처음처럼 그때의 악몽을 보여줬음 좋겠다.

"…."

그러면 손목 몇 번 긋고, 목 몇 번 매달면 끝날 일일텐데. 이렇게 행복한 꿈을 꿔버리면.

"…아무것도 할수가 없잖아."

더 이상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메마른 감정의 바다에 두 발을 담그고, 한걸음씩 걸음을 옮기다, 그렇게 빠져버린다.

새장에서 탈출한 새는 결국 죽고 만다.

단 한 번도, 야생을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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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13 21:39 | 조회 : 1,419 목록
작가의 말
11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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