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초승달이었다.

내가 그동안 미뤄온 일의 무게를 깨닫고,

현실을 인지한 날,

하늘을 밝히던 달은.

구름에 묻혀 빛조차 밝지 않은 초승이었다.

아아, 나는 또 내가 미룬 일의 크기에 짓눌려,

스스로의 숨을 옭죄는구나.

어찌 이리도 어리석은가.

어찌 이리도 한심하단 말인가.

제 업보에 제가 짓눌려 죽어가는 꼴이라니,

두 눈을 뜨고 볼만한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아직 하지도 않은 일에 지쳐 나가떨어지는 일은,

사람의 것이라고밖에 생각될 수 없는 지독한 무력감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한심하다.

아둔하다.

제 멍청함의 결과를 책임지지 못하고 회피를 연속하는 나 자신이,

혐오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분명 나는 무책임한 사람들을 혐오한다.

무능하고 무지한 사람들을 혐오한다.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경멸한다.

그런데, 그 무책임하고, 무능하며, 무지하고도 의지 없는 사람이 자신이라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는 쓸데없는 데에서도 공평해서,

나 자신도, 타인도,

똑같이 경멸하고,

똑같이 혐오한다.

그리고 스스로는,

그 경멸하고 혐오하는 이들 중,

가장 앞에 세워진 대상.

아아,

내게 내일이 밝아오지 않기를.

오늘의 끝이 암흑에 물들기를.

아무것도 하지 않음에도 지치는 이에게,

그런 가치 없는 이에게,

내일이 존재하는 것은,

사치가 분명할테니.

2
이번 화 신고 2020-05-25 22:36 | 조회 : 484 목록
작가의 말
SSIqkf

오늘의 기록. 언제나 그렇듯 마지막이길 바라는 기록.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