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아, 우울해

문제 풀어야 하는데

할 게 많은데

왜 이 지랄을 떨고 있는 건지

진짜 조금 이유 있게 우울해주면 안 되나.

턱 끝까지 잠기는 무기력감.

숨을 틀어막는 무기력감.

흐릿해져가는 상처들이 눈에 밟혀,

오늘도 나는 벼랑 끝에 선다.

약속.

지킬 자신이 없었던 약속.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가 망가짐을 앎에도 칼을 들지않는 나의 아둔함에

경의를 표하며,

차갑게 스스로를 비웃는다.

기꺼이 자신보다 약속이 우선시 되는 것은,

이기적이고도 이기적인 내가 그깟 약속 하나에 얽매여 칼을 들지 못하는 것은,

그저 하나의 모순이고,

그저 하나의 변덕이다.

거짓을 밥먹듯 해온 내가,

거짓 하나 얘기하지 못하는 것 역시,

모순이고 변덕이었다.

진통제를 한 번에 다섯 알을 입에 털어넣은 적이 있다.

고작 이틀 전의 일이었나.

아마 홧김, 그저 짜증.

죽지 않을 것을 알기에 할 수 있는 돈지랄에 불과하겠지.

요즘 도대체 진통제만 얼마를 처먹은 건지 가늠도 되지 않아.

아침, 점심, 저녁, 식후 30분, 하루에 세 알.

그걸 한 시간 쯤 전에 세 알을 한 입에 털어넣었어.

이걸 읽는 사람이 있다면,

그도 생각하겠지.

많이도 처먹었다고.

여기에는 없고,

실제로도 없는,

이제 곧 생길,

자세한 내막을 아는 이는 비웃을 거야.

식사도 제대로 않고 진통제만 처먹어대니 효과가 좋을 리 없지 않냐고.

이제 이걸 읽는 당신의 차례.

실제의 나를 알지 못하는 당신의 차례.

방금 내막을 알게된 당신의 차례.

비웃도록 해.

서술자의 멍청함을.

화자의 아둔함을.

긋고 싶어.

손목을, 팔을,

어디든 좋으니,

내가 이 무력감에서 벗어나기를.

긋고 싶은 것인지,

죽고 싶은 것인지,

살고 싶은 것인지.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는 나의 마음을,

우울하고 비관적이기 짝이 없는 이 빌어처먹을 마음을,

짓밟아 없애버리고 싶어.

우울함, 무기력감, 자괴와 자책.

후회, 실망, 포기, 내가 품는 그 모든 부정적인 감정들.

그것들을 느끼지 위해 가질 마음이라면,

없는 편이 나아.

나의 삶은 짧았음에도 지루하기 짝이 없어서,

나는 벌써 권태를 느낀다.

기대하지 않아.

희망을 품지도 않아.

기대는 더 큰 실망을,

희망은 더 큰 절망을.

그렇게 부정적인 감정을 안겨주겠지.

기대하는 것에도 지쳤다

한 것도 없음에 쉽게 지치는 자신에게,

또 한 번 자괴감을 느낀다.

만약 구원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 구원의 손길은 필시 내게는 닿지 않는 것이겠지.

알고 있었어.

아득히 먼 옛날부터,

어쩌면 꽤 최근부터.

그럼에도 아득바득 살아남으려 버티는 나의 모습은,

얼마나 비참한가.

조금만 더 앞으로.

조금만 더 높은 곳으로.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내가 행복해질 수 있도록.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는 추상적인 관념들과 함께,

나락에서 빠져나가려 발버둥친다.

어차피 나는 죽지 못하는 겁쟁이.

자신을 위해 기꺼이 거짓을 내뱉는 거짓말쟁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

적극적이지 못하고, 언제나 구경꾼일 뿐인 방관자.

이 글을 읽고 있는 그대에게 부탁할게.

내가 글을 더 이상 쓰지 못하도록 만들어.

신고를 하던가, 문의를 넣던가.

그렇게 내 숨통을 틀어막아, 내가 죽을 수 있도록.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부탁.

들어줘도 들어주지 않아도 찜찜할 뿐인,

기분 나쁜 부탁.

어쩌면 이 글을 읽지 않는 것이,

그대에겐 가장 좋을 지도 모르지.

어차피 기분을 잡칠 뿐인 글인데,

굳이 시간 들여 읽을 필요는 없잖아?

그저 어느 아둔한 이의 화풀이 글.

그저 어느 한심한 이의 유일한 숨통.

그대가 읽기에는 다소 쓸모없는 글.

그걸 알기에 나는 글을 쓰며 처음으로 그대에게 말을 걸어.

그대, 왜 내 글을 읽어?

이야기가 새었네.

본론은 이게 아니었는데.

본론은 어디까지나 나의 무력감.

빌어먹게도 짜증나는 이 우울함.

시도 때도 없는 이 권태감.

나는 과연,

죽기 전에 이러한 것들에게서 해방될 수 있는 것일까.

2
이번 화 신고 2020-05-26 00:37 | 조회 : 523 목록
작가의 말
SSIqkf

기분 나쁘시라고 쓴 거 아니에요... 손 가는대로 쓰다보니 저렇게 되어서..... 이런 글 읽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