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붕2

수업은 지루했다. 공부를 못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수업을 집중하고 들어 본 기억은 없다. 공부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시험기간 누군가의 독촉에 못이겨 적당하게 공부를 할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여느 때와 다름 없이 책을 펼쳤다. 교과서가 아닌 도서관에서 빌려온 일반 책.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은 목표를 가지고 있다. 목표가 없다면 주인공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그러나 도저히 이 책은 읽어주지를 못하겠다. 이런 지루하기 짝이 없었고, 무엇보다 나에게 뭔가를 가르치려 드는 거만한 작가의 말은 더는 읽어주기가 어려웠다. 목표는 무슨 목표. 그런 것 없어도 나는 내 인생의 주인공이었다. 비록 내 인생이 어떤 ‘이야기’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시시한 이야기따위가 되느니 차라리 목표로 하는 것 없이 자유롭게 살겠다.

“후.”

나는 한숨을 쉬고 턱을 괴었다. 더는 수업에도 책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고개를 옆으로 돌린다. 불투명한 시트지를 붙여 논 창문으로는 복도의 풍경조차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아주 작은 틈으로 엿보일 뿐. 그 감옥 같은 풍경에 절로 답답한 마음이 든다. 그런 내 눈이 순간 크게 뜨인다. 그리고, 내가 자리를 팍, 박차고 일어남과 동시였다. 복도에서 쿵, 하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 것은.

“아, 깜짝이야.”

“뭐야?!”

꾸벅꾸벅 졸던 아이들이 고개를 번쩍 들어 올리고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그 소리에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을 짓고는 교탁을 두꺼운 손바닥으로 탁탁, 친다.

“조용! 조용! 집중해!”

선생님이 재빠르게 교탁을 벗어나 복도로 향한다. 그틈을 타 아이들도 몇 복도의 창문으로 달라붙는다. 내 자리를 뺀 모든 창가로 아이들이 몰린다. 나도 자리를 벗어나 문으로 향한다. 내가 자리를 뜨자 내 눈치를 흘끔 보던 몇 학생이 금세 내 자리를 차지한다. 나는 그를 신경쓰지 않고 뒷문을 열어 복도로 나선다.

“은우 형…….”

형이 복도에 ‘홀로’ 서 있다. 형의 모습을 발견한 선생님의 두 눈이 크게 뜨인다.

“어, 어이! 거기, 너! 이게 무슨 짓이야!”

선생님이 서둘러 형의 앞을 가로막고 선다. 선생님의 뒤에서 불쌍한 남학생 하나가 복도에 쓰러져 떨고있다.

형이 씩, 미소 짓는다. 형의 시선은 선생님이 아닌 나에게 향해있다. 나는 어깨를 크게 위로 들어 올렸다가 내리며 후, 숨을 뱉어낸다. 정말, 힘든 인생이 아닐 수 없다. 아, 정말 나는 그냥 목표따위 없이 자유롭게 살고싶다.

형이 앞에서 고함치는 선생님을 무시하고 다시 한 발 앞으로 나섰다. 그만 둘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뻔뻔한 형의 움직임에 선생님조차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을 하지 못하고 계신다. 결국, 내가 형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선다. 형의 자비 없는 발길질이 그 아이의 얼굴에 가 닿기전 내가 형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만 하세요.”

“놔.”

“무슨 일인데 그래요.”

“저 새끼가 먼저 시비 걸었어.”

형이 고갯짓으로 바닥에 쓰러진 학생을 가리키며 말한다.

“어떻게 했는데요?”

“꼬라보잖아.”

“…….”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지적해야 할지 모르겠는 형의 말에 나는 말문이 턱, 막혔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잠자코 있자 그것이 내가 그를 말리는 것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는지 형이 다시 몸을 움직인다. 나는 앞으로 한 발 내딛은 형의 어깨를 다시 단단히 붙잡는다.

“너부터 죽여줄까.”

형이 살벌한 얼굴로 나를 돌아본다. 그 얼굴에 나는 움찔, 한 발 뒤로 물러선다. 그러나 이대로 형을 가만히 둘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꾹, 형의 어깨를 쥔 손에 힘을 준다.

“저도 죽이실거에요?”

내 물음에 형의 눈이 빛난다. 나는 다시 주춤, 뒤로 물러선다. 그러자 형이 씩, 웃어온다.

“아니, 그럴리가.”

참 다행인 일이었다. 후, 나는 다시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그만해주세요. 선생님도 계시잖아요.”

내가 흘끔, 우리 둘을 보고 서 있는 선생님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말한다. 그러자 형의 눈이 그제야 선생님에게로 가 닿는다. 선생님이 형의 눈빛에 뻐끔뻐끔 입을 연다.

“너, 너…이은우! 교무실로 따라 와!”

“…….”

선생님의 외침에 형이 교복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선생님 곁을 지나친다.

“너! 어디가!”

“교무실이요.”

형은 그렇게 단순히 답하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에 한 시름 덜은 나는 하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요새 한숨 쉬는 일이 부쩍 늘었다. 순간 형이 뒤를 돌아본다. 갑작스럽게 닿아오는 시선에 내 어깨가 굳는다.

“왜요?”

내가 형을 보며 작게 물었다. 그러자 형이 한 쪽으로 살짝 고개를 갸웃해 보인다.

“너는 같이 안 가?”

이 형은, 정말 내가 자신이 어디를 가든 쫓아다니는 꼬붕인줄 아는 건지. 나는 손가락을 들어 교실 문을 가리켜 보았다. 그러자 형의 시선이 교실로 향하고 그제까지 교실 창에 붙어 있던 아이들이 사사삭, 하고 서둘러 흩어지는 것이 보인다.

“저는 교실 들어가야죠.”

“…….”

형의 눈썹이 마음에 안든다는 듯 위로 올라간다.

“…수업들어야 해서요.”

형의 불만어린 눈빛에 결국 내가 한 마디 사설을 더 가져다 붙인다. 내 갖은 노력에 그제야 형이 다시 내게서 시선을 거두어 간다.

“이따 봐.”

형은 그렇게 한 마디 던지고 내게서 멀어진다. 형이 말하는 ‘이따’가 도대체 언제인지 모르겠으나 뭐, 일단은 귀찮은 일이 빠르게 정리되어서 다행이었다.

지금은 그저 빨리 내 자리로 돌아가 아까 전 지루하고 재미없다고 투덜대었던 책이나 다시 읽고 싶을 뿐이다. 그러나 내 바람과는 다르게 교실에 들어서자 내게로 쏟아지는 시선과 웅성거림은 다시, 내가 책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든다.

“야, 봤어? 쌤 완전 개 무시하던데.”

“……서 율은 뭐한거야?”

누구의 주목을 받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이런 상황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굳이 학교에 다녀야 하는 것이라면 나는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고 조용히 다니고만 싶었다. 이것은 다 저 형때문이었다. 나는 형의 원망하며 책을 탁, 하고 덮었다. 그러자 교실 안이 삽시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진다. 나는 시선을 들어 교실을 주욱, 훑어 보았다. 그러나 모두 입을 다문 채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선생님은 형과 함께 교무실에 가 계시지도 않은데…….

아, 빨리 집에 돌아가 잠이나 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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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11 13:27 | 조회 : 1,680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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