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붕5

“무슨 게임 하는 거야?”

“별 것 안 해요.”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여자로 인해 게임에 집중이 안 된다. 방에 들어가지만 않았을 뿐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꺼내들었어도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 차라리 형 옆에 딱 붙어 앉아서 아무의 방해도 없이 게임이나 했으면 좋겠는데. 형은 왜이렇게 매일 여자친구를 바꿔대는지 모르겠다. 어차피 금방 헤어질 거.

“앗, 이거 어렵다!”

잠시 조용한가 싶던 옆에서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나는 이제는 시시해지려는 게임에서 시선을 떼고 옆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여자가 내가 하던 게임을 다운로드 받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가 조작하는 노란 공은 얼마 가지 못해 밑으로 추락해 죽고는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누나 진짜 못 하네요.”

“아, 아니야~ 우씨.”

내 놀리는 소리에 여자가 조그마한 핸드폰 화면에 들어갈 것처럼 얼굴을 박고 집중한다. 조그만 손으로 어떻게든 공을 살려 보려고 조작하는 모습이 꽤 귀엽기도 하다. 형이 이 누나랑 왜 사귀는 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줘 봐요.”

“한 번만 더 해 보고!”

내가 손을 내밀자 누나가 다급하게 공을 조작한다. 하지만 역시나 공은 얼마 못 가 바닥으로 추락하고 만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다시 큭큭, 웃는다.

“여기선 이렇게 해야죠.”

“어! 와, 너 진짜 잘한다.”

내가 몇번 버튼을 누르자 손쉽게 공이 목적지에 도달한다.

“자, 여기요.”

초롱초롱한 눈으로 신기하다는듯 나를 보는 눈이 호기심 많은 고양이 같다.

“서 율.”

내가 누나를 보며 웃고 있을 때 갑자기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누나와 게임을 하던 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어 올렸다. 형이 누나의 옆에서 우리 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다. 형의 눈이 빤히 나를 향한다. 나는 의문을 담은 눈으로 형을 마주보았다.

형의 손이 점점 내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휙, 하고 뻗어온 형의 손이 내 옆에 붙어 있던 누나의 얼굴을 채갔다.

“읍! 은우……!”

누나가 형의 이름을 부를 새도 없이 형의 입술이 누나의 입술에 부딪쳐왔다. 곧, 듣기에 민망한 소리가 몇 번 그들에게서 들려왔다. 주위는 삽시간에 쥐죽은 듯 조용해져 있었다. 나는 고개를 반대 편으로 확, 돌렸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 같았다.

“은우야, 갑자기 이러면…….”

“…….”

거사가 끝났는지 누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아무도 형쪽을 바라보지는 못했다. 민망한 소리가 끝났음에도 주위는 온통 정적이었다.

“이제 다 집에 가.”

“어, 어. 어! 그래야지. 야, 가자.”

형의 낮은 한 마디에 다들 민망한 얼굴을 한 채로 서둘러 본인들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 이거 아직 못 마셨는데.”

무리에서 눈치 없기로 소문난 호령 형이 맥주캔을 하나 흔들어 보이며 말하자 산호 형이 호령 형의 뒷덜미를 낚아챘다.

“들고 나와.”

“어, 어?”

북새통 속에서 누나만 빨개진 얼굴을 한 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나도 잠깐 나갔다 와야 하나, 내 집인데……. 하지만 별 불평 없이 PC방에서 시간이나 때우다 올 요령으로 핸드폰과 지갑을 챙겨드는데 옆에서 형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넌 안 가?”

안 그래도 가려고 했거든요……. 울컥, 서러운 마음에 형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형의 시선은 나에게 향해 있지 않았다. 형이 빤히, 자신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누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

누나가 당황한 표정으로 형의 얼굴을 살폈다. 그러나 형은 말 없이 빤히 누나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누나의 얼굴이 전보다 더 붉게 물들어간다.

“아, 아……가야지. 어, 그럼 나 갈게?”

“응. 잘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누나를 형은 올려다 보지도 않고 심드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는 허둥지둥대며 소파 위에 있던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여기요…….”

나는 소파 위에 있던 누나의 핸드폰을 집어 누나에게 내밀었다. 누나의 얼굴이 터질 것 처럼 붉다. 그런 누나가 조금은 안쓰러워져서 나는 측은한 표정으로 누나를 바라보았다.

“어, 고마워. 다음에 또 보자.”

누나는 속사포로 말하고 현관으로 향했다. 누나를 따라 나도 지갑을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넌 어디가.”

그런 나를 형의 목소리가 잡아챘다. 나는 누나의 뒤를 따르다 말고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어……누나 집이라도 데려다 드리려고요.”

“어? 안 그래도 되는데!”

그러나 누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 팔에 팔짱을 해왔다. 다시 누나의 물컹한 것이 내 팔에 닿아와 나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네가 왜 데려다 주는데?”

“밤도 늦었고, 술도 드셨고…….”

형이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그 모습에 나는 슬쩍, 누나에게 잡혔던 팔을 빼냈다.

“그리고, 형 여자친구시잖아요.”

“…….”

나는 현관에 서서 형의 표정을 살폈다. 매번 바뀌던 형 여자친구한테 깍듯이 대하도록 시킬 때는 언제고 갑자기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고개를 살짝 갸웃하자, 형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다녀 와…….”

“다녀 올게요.”

“은우야, 안녕!”

형의 허락에 누나가 신난 얼굴로 다시 내 팔을 붙잡고 형에게 손을 흔든다. 그 모습에 형의 표정이 또 미묘하게 찌푸려진다. 나는 형이 또 지랄 하기 전에 서둘러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밖으로 나서자 캄캄한 세상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 가로등 빛 몇개를 제외하고는 세상은 매우 어두웠다. 내가 잠시 주머니 안에서 손을 꼼질거리고 있었더니 누나가 내 옆에서 살짝 떨어진다.

“?”

나는 의문의 눈으로 누나를 내려보았다.

“담배 피려는 거 아니야? 기다릴게.”

누나가 내게서 한 발 떨어진 채로 말한다.

“누나는 담배 안 피세요?”

나는 주머니에서 꼼질거리던 손을 멈추고 누나에게 물었다. 형과 어울리던 여자친구들 중 담배를 피던 사람이 더 많았다. 그러나 의외로 누나는 고개를 가로로 저어 보인다.

“안 펴!”

누나가 씩, 웃으며 큰 소리로 답한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저도 안 펴요.”

“아, 정말? 그럼 가자.”

내 말이 끝나자 누나가 다시 내 옆을 바짝 붙어 내게 팔짱을 낀다. 이제는 제법 그 스킨십이 익숙해졌다. 누나의 볼이 추위 탓인지 아니면 아까 마신 맥주 탓인지 살짝 붉게 물들어 있었다.

“은우 너랑 내 사이 질투하는 거지?”

“네?”

“그렇잖아, 내가 너랑 놀고 있으니까 갑자기 그러고…….”

누나의 볼이 더 빨개졌다. 추위 탓도, 맥주 탓도 아니었나 보다. 나는 그냥 피식, 웃으며 누나의 말에 동조해주었다.

“그러게요.”

형이 질투를 하는 모습은 처음 봐서 나도 신기하기는 했다.

“무서워 보여도 은근 귀엽다니까, 그치!”

“저는 잘 모르겠던데…….”

“나한테만 그런 건가! 히히.”

집에 가는 내내 재잘재잘 형에 대해 이야기하는 누나의 모습이 예뻐보였다. 책에서 사랑 받는 여자는 아름다워 보인다더니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나 보다.

“그럼, 너도 조심해서 가! 나중에 또 같이 게임 하자!”

“네.”

현관에서 서서 손을 붕붕 흔드는 누나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나의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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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9-11 13:28 | 조회 : 1,176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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