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내 나이 24살, 군대를 다녀오고 1년이 지난 그때, 모아둔 돈도 없고,비전도 없었던 나는 아르바이트에 목말라 있었다. 최저시급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곳밖에는 구할곳이 없었기에 아르바이트 시간으로 꽉꽉채워 최대한 될 수 있는대로 벌기위해 일만했던 나.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다 난다.

어선도 타고, 술집, 음식점,공사장, 거의 모든 일들을 했던 그때. 공사장에서 일을 하던 도중 노동에 찌든 내몸은 일을 치르고야 말았다. 벽돌 한가득을 등에 지고 오르던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계단에서 굴러넘어졌고. 나는 그대로 병원에 실려가게 되었다. 그리하여 열심히 모은 내 돈은 아랫사람들에게는 터무니 없이 비싼 병원비로 가게 되어 내가 한 일들은 전부 헛것이....


-------4년전---(지금 이현의 나이는 28살)



흰 커튼을 펄럭이며 불어오는 기분좋은 바람이 날 간지럽게 했다. 창문으로 보이는 밖 풍경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촉촉한 땅에서 품어나는 새싹과 마른 가지들은 금방이라도 봄물을 터트릴듯 아슬아슬했고, 보라색으로 물든 하늘은 서서히 넘어가는 해를 품에 안고 어루만지는 듯 했다. 아무 짓도 하지 않고 하루종일 풍경을 바라보기만 해도 정말 행복할것이다. 아니, 행복하지 못하다. 지금 헛것이 되어버린 내 돈을 생각하면 한가롭게 바깥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수가 없다.

"하아.."

다리와 팔에 감긴 붕대가 신경쓰였다. 까맣게 타들어가는 내 맘과는 다르게 새하얀 붕대가 나를 약올리는 듯 했다.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 신경질적으로 내 팔을 움직여 옆에 놓여진 내 통장을 집었다.

"악..! 아오..온몸이 ...흑..내돈"

팔만 움직였을 뿐인데 온몸으로 도는 저릿한 느낌에 순간 동작을 멈춘 나. 나는 금방의 내 행동을 후회하며 굼뱅이 구르듯 느릿느릿 조심스래 팔을 제자리로 돌렸다. 펼친 내 통장에는 잔고280원이라는 충격적인 글씨가 적혀져 있었다.

흑. 몇개월 동안 나의 수고는.. 병원비는 나같은 사람들에게는 터무니 없이 비싼 금액이였다. 작은 병이라도 비싸게 돈을 받는 병원. 실제로 우리나라 사람들 중 병원에 오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고위층 사람들에게는 별것 아닌 돈이겠지만... 죽을병에 걸려도 집에서 진통제 먹어가며 죽어가는 사람들또한 넘쳐났다. 몇개월 동안 모은 돈이 그래도 꽤나 되었는데.. 한번에 저렇게.. 280원이면 커피하나 못사먹는다.


내가 있는 이 병실은 6인실, 사람이 많아야 정상이겠지만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야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으니까, 돈을 많이 버는 사람들은 많이 오겠지만 ...6인실에 오겠는가? 그들이? vvip룸에서 작은상처 하나에 특급대접 받으며 입원해 있겠지..

그나저나 정말 너무한거 아닌가 돈 없는 사람들 있는 곳이라고 .. 텔레비전 하나 없이 초라하게 침대만 놓여져있다니.. 너무도 심심하다. 병실에 입원해 있는 사람이 있다면 대화라도할텐데... 나말고는 아무도 없고 이건 고문이다 고문.





3일째다 3일째.. 아무말 없이 정말 자기 할 일만 하고 가는 간호사들을 제외하고는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복도에서도 간호사들과 의사를 제외하고는 보지 못한 나는 이 넓은 병원에 의도치 않게 고립된듯한 느낌이 들었다. 너무도 따분한 그 느낌에 나는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비벼댔다. 오랜시간 누워있어 납작히 눌려진 머리가 풀렸다.

너무 심심했다. 아무것도 안하고 자기만 한 나, 하다못해 신문이나 잡지를 들러 가려했지만 몇번을 구른건지 팔다리가 만신창이가 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거기에다 금간 갈비뼈까지. 간호사들은 말을 거는 나를 무시하기 일 수 였고.. 날 찾아와 휠체어에 태워서 산책도 해줄 사람도 없고... 가족은 이미 나를 버린지 오래였고, 너무도 바쁘게 살아와 친한 친구 한명도 제대로 없는 나였기에 나는 나을때까지 홀로 이 병실을 지켜야했다.

-끼익

그때, 병실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들어왔다. 응급차에 끌려온 나를 데리고 치료했던 의사였다. 이 시간대쯤 나를 체크하러 오는 의사. 그는 잠시와서 나를 응시하며 검사한후 이 곳을 떴다. 그가 부담스러워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었던 나는 이제는 입이 근질거려 그에게 말을 걸 작정이였다. 잠시지만 사람과 이야기를 한다면 정말 즐거울 것 같았기 때문이였다.

밝은 주황빛이 도는 찰랑거리는 머리가 이마를 자연스럽게 덮고 매력적인 속 쌍풀을 지닌 눈, 웃으면 보조개가 예쁘게 생기는 그, 별로 작지 않다고 생각했던 176의 키를 가지고 있는 나보다 훨씬 큰 그는 남자인 내가 보기에도 완벽했다. 약간 질투가 날정도로.. 돈도 많이 벌텐데.. 세상은 불공평하기만 하다.

"아..안녕하세요!"

심심해 죽을뻔했던 나는 의사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건넸다. 아무 표정 없이 내쪽으로 걸어오던 의사는 처음으로 말을 꺼낸 나에게 살짝 웃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쪽으로 와서 깁스한 팔과 다리를 살짝 건드리며 보던 의사는 자신의 손에 들려진 판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냥 간단한 행동일 뿐인데 기품이 넘쳐흐르는 그에 나는 잠시 감탄했다.

"저..그"

"뭐 입원하시는 동안 불편하신거 있으셨나요?"

내가 우물쭈물 말을 꺼내자마자 내가 무슨말을 할지 이미 알고 있다는듯 그는 내가 말하기 쉽게 먼저 물어봐 주었다. 돈 많은 곳에서 자라 엘리트 코스를 밟았을 그에게 나는 하찮은 사람으로 보일터라 퉁명스레 대할것 같았던 그가 나를 배려해주며 상냥하게 대하자 살짝 놀랐다.


"어...음.. 너무 심심한데요 그..뭐 볼꺼라도.."

"아, 그렇군요 .. 여기는 너무 사용한지가 오래되어서 제가 현씨 생각을 잘 하지 못했네요"

그는 내 침대옆에 놓인 간이의자에 앉았다. 그는 내 깁스한 팔에 자신의 손을 올려두었다. 올려둔 팔을 문지르면서 살짝 미소를 짓는것 같았는데 그는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미소를 지웠다. 어라?

"네, 그래서 저 영화 한편이나, 책한권만 가져다 주시면 정말 고마울것 같아요"




"아, 그럼 저랑 같이 영화 한 편 볼까요?"

그 의사가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언뜻 내 깁스한 팔을 문지르고 있는 그의 손 힘이 더 세지는것 같았다. 같이 영화를 보자고..? 할 일이 없나? 아무래도 좀 이상한것 같다.

"의사님 많이 바쁘시지 않나요..?"

"시간이 약간 비어서요 그 틈에 영화좀 보려 했는데 이왕 같이 보면 더 좋지 않나요?"

"저야 좋죠! 마침 심심했는데"

이 병원 의사는 정말 친절하구나 가난한 환자한명도 이렇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


의사는 나를 휠체어에 태운 후 어디론가 향했다. 그가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나는 가만히 앉아 3일째 한곳에만 있었던 내가 어디론가 나가는 그 순간의 자유를 즐기고 있었다, 비록 병원 안이지만.

내 휠체어를 끄는 의사가 지나갈때마다 주위에 있는 의사와 간호사가 고개를 정중히 숙였다. 그들의 인사를 받고도 아무런 반응 없이 지나가는 의사에 내가 더 민망해져 나는 고개를 숙였다.

병원이 얼마나 큰지, 한 곳에만 있어 이 규모를 몰랐던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끝이 없는 이 병원에 속으로 감탄했다. 큰 건물이 3개로 복도로 이어져 있는 이 병원에 역시나 내가 있던 쪽은 낡고 오래된 작은 건물이였다. 다른 두 건물은 번쩍거리는 큰 건물이였는데..

두 건물에 있는 방을 보니까 다 vip실뿐이다. 나는 새삼 내 스스로가 비참해 지는 기분을 느꼈다. 복도를 타고 넘어온 이 건물은 그냥 걸어다니는 복도일 뿐인데도 천장이 넓게 파여저 있었다. 인테리어에 신경을 쓴듯 반짝거리는 금색으로 도배된 천장이 나와 의사를 비쳤다.

너무도 태연하게 걷는 그에 비해 놀라기만 하는 내 스스로가 위축되어 내 어깨가 움추러 드는 것 같았다. 그는 한참을 걷다 베이지색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자, 제 사무실이니까 긴장푸셔도 되요"

힘주어 치켜올려저 있는 내 어깨를 눈치챈 그가 두 손으로 내 어깨를 가볍게 눌렀다. 그의 손길을 따라 어깨 힘을 풀었다. 전용사무실도 있다는 것인가? 의사라는 것도 대단한데 개인 방도 있다는 것에 나는 속으로 뭔가 대단한 사람과 같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냥 일하는 의사여도 놀랐을텐데 여기까지 오는 동안 모든 의사와 간호사에게 인사를 당연한듯이 받고.. 왜 이런 사람이 나같은 사람을 보는 거지


"저.. 아무래도 그냥 돌아가겠습니다 하하하 그냥 영화는 다..다음에"

깁스한 팔을 움직여 휠체어를 움직일 수 있을까? 여기 까지 오는 길이 너무 멀어 다시 돌아갈 수는 있을까 ? 하는 생각에 다시 돌아가려면 그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꺠달았다. 나는 머쓱한 머리를 긁적이며 가만히 있었다. 너무 부담된다..부담이.. 그냥 조용히 있다가 심기 안 거슬리고 돌아가야지 .


그는 짙은 나무로 우아한 무늬를 낸 자신의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 속에는 usb여러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그는 태연히 그 중 아무거나 집어 텔레비전 옆에 난 곳에 꼽아넣었다. 그가 리모컨을 들고 몇번 누르자 영화로고가 뜨며 재생되었다. 그는 나를 옮겨 쇼파위에 앉혔다. 나는 그가 나를 들때 불편하지 않게 온몸에 힘을 주며 최대한 의지 안하려 힘썼지만 그는 괜찮다며 맡기라고 상냥하게 말해주었다. 너무 부담스럽다. 눈물이 날정도야.


그와 본 영화는 도입부 부터 피가 터지는 잔인한 고어 영화였다. 그런 영화가 취향이 아닌 나였지만 영화를 보여주는 그의 정성에 심취하려 노력했다. 나는 그와 어색하게 쇼파에 앉아 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던 도중 그 속의 남자주인공이 여자첩자를 고문하는 내용이 나왔다. 스파이 내용의 영화였는데 여자배우를 보는 사람이 더 고통스러운 그 장면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으아..,못보겠다 토나와 욱.

고개를 돌려 보게된 그 의사는 영화에 심취해 있는듯 보였다. 쇼파 팔걸이에 편하게 놓은 그의 팔이 건들거리며 흔들렸다. 저 영화를 보기는 싫었던 나는 의사쪽으로 얼굴을 돌린체로 앉아있었다. 자신을 쳐다보는듯한 시선을 느낀듯 그가 나를 마주 바라보았다. 나를 본 그의 얼굴은 살짝 ...흥분해있는것 같았다?


그는 소리가 나도록 침을 삼켰다. 그리고 날향해 보지못했던 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때요? 재밌죠? 이부분이 진짜 하이라이트인데, 남자가 여자손을 자르고 그 손을 여자 목구멍에 넣어서 토하게 만드는거..."

그는 정말 오늘 점심메뉴를 말하듯 태연스래 잔인한 장면을 설명했다. 으으..듣기만해도 싫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어는 내 스타일은 아닌것 같다. 게다가 이건 너무 잔인해. 영화를 바라보고 있지 않았지만 고화질 음질로 들리는 영화 속 소리가 들렸다. 살을 자르는 소리. 그리고 고통스럽게 비명을 지르는 여자 소리. 나는 온몸에 소름이 바짝 돋았다. 겨울이 다 지나가고 따듯한 봄인데도 추운것 같았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넓은 그의 사무실을 채웠다. 의사는 쇼파에 다리를 꼬고 앉은 자세 그대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사실 아까 날 마주보고 나서부터 계속 날 바라보는 그에 나는 민망스러워 모른척 하고 있었다. 영화를 보지 못해 그 주변을 보며 보는척 하였는데 그런 내 행동을 간파한듯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에 나는 살짝 마른땀이 났다.

"이 영화는 제게 매우 특별한 거예요 현씨"

그는 낮게 깔린 목소리로 느릿하게 말했다. 여자의 비명사이로 귓가에 속속히 들어오는 그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동공에 힘이 풀린듯 몽롱한 눈동자가 보였다. 뭐지 이 의사.


"네!..뭐 재..재밌는데요? 하하 취향이 이쪽이신가 봐요 "

"하.. 취향이 너무 이쪽이긴 하죠, 현씨도 이 영화 맘에 드시나요?"

나에게 쏟아져 오는 그의 시선이 부담스럽다. 아니라고 하면 안될것 같은 분위기에 나는 고개를 기계적으로 끄덕거렸다.

"...네!..네.."

"제가 이걸 보면서 처음으로 자위란걸 했었거든요"


정적. 이 의사..변태다. 살짝 눈동자를 돌려 본 그의 중심부는 이미 불끈 서있었다.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 나는 할말을 잃었다.

"제 동정을 가져간거죠 이 영화가"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쳐다보았는데 평소에 되게 예쁘다고 생각했던 눈이 그렇게 무서워 보였던 것 처음이다. 약간 그의 호흡이 떨리는 것도 같고

"약간 좀 수위가 약하긴 한데 저것보다 더 센것들 제가 많이 모아뒀어요"

아까 가득한 usb가 이거였냐!!

"퇴원하실때까지 저랑 영화 보는 거예요, 알았죠? 현씨?"

나는 나에게로 다가와서 내 손목을 부서지도록 세게 잡는 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막 끄덕였다. 그는 만족한듯 다시 영화에 눈을 돌렸다.



...뭔가 잘못된것 같다.








0
이번 화 신고 2016-02-27 17:57 | 조회 : 2,872 목록
작가의 말
방학식

막 써재끼고 있네요 허허; 오타죄송합니다!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려요 !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