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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영화가 끝나고 그 의사는 나를 다시 병실로 데려다 주었다. 그의 취향을 알아버린 뒤로부터 그의 매력적인 보조개가 약간은 소름끼쳤다. 세상에는 뭐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 뭐.. 침대로 나를 눕히는 것을 도우는 의사. 나는 온몸이 경직된 것을 느꼈다. 침대에 누운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웃는 의사에 나는 머쓱히 따라 웃었다.

"영화 잘 봤습니다. 덕분에 좀 나아진것 같아요"

그래요. 하며 의사는 가려는듯 몸을 일으켰다. 문득 그에게 물어볼 것이 생각난 나는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았다. 고개를 돌리던 그는 다시 나를 바라보았고 용건을 묻는듯 하는 그 눈빛을 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의사

".....?"-나


잠시 정적.



"...푸하하하 현씨, 여기 제 명찰이요"


그는 가슴에 달린 자신의 명찰을 손으로 가리켰다. 한참을 웃던 그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내 눈치를 보고는 웃으려는 것을 참으려 입을 꽉 물었다. 그의 입은 살짝 비틀려지고 있었다.


"웃지 마시죠.."

"아..안웃을게요 죄송합니다 큼..큼"

의사가 가르친 명찰에는 '한상혁'이라고 적혀져있었다.



"한상혁입니다, 이현씨 편하게 상혁이라고 불러주세요"


"제가 어떻게 의사님 이름을 그렇게 부릅니까..!"


상혁 선생님이라고 부를게요. 그는 마음대로 하시면 돼요. 하며 그는 뒤를 돌아 병실을 나갔다. 그가 걸음걸음 움직일때마다 그의 오렌지빛 머리결이 찰랑거렸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나뭇잎 떨어지는 소리 하나 안들리는 적막이 이 병실을 채웠다. 혹시라도 이 기회를 타 숙면을 취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나는 조심히 몸을 뒤척거렸다. 활짝 열린 커튼으로 어느세 거의 다 져 노란 빛을 품어내는 해가 보였다.

"뭐.. 내가 언제 이렇게 한가롭게 있겠냐"


퇴원하고 이제 또 지옥 시작일텐데..





상혁은 정말 자신이 한 말을 지키듯 매일 3시에 나를 데리러 와 함께 영화를 보았다. 그가 고르는 영화들은 죄다 하드코어의 고어영화뿐이였다. 그 영화를 볼때마다 이상한 눈빛으로 돌변하는 그가 신경쓰였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았기에 나는 안심했다. 취향이 이상하면 뭐 어떤가, 태어날때부터 그렇게 태어난 것일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그에게서 경계를 풀었다. 그와 영화를 보는 것이 일주일 정도가 되자 나와 그는 자연스럽게 일상얘기를 하는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3시가 되자 상혁이 나를 찾아왔다. 그가 미는 휠체어를 타고 가는길, 가는 길에는 오늘도 역시 지나가던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그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이제는 그 모습이 익숙해져 인사를 안하는 사람이 있을까 둘러볼 정도로 긴장이 풀어졌다. 의기양양하게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보는 상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저, 근데요 상혁선생님 이제 그 .. 고어물을 그만 보고싶은데요"

멈칫.

"재미없나요..? 전 현씨도 재밌게 즐기는 줄 알았는데, 죄송합니다"

약간은 풀이 죽어보이는 그가 살짝 귀엽게 보였다. 나보다 덩치가 훨씬 산만한 사람인데 말이다.

"아니, 재밌기는 한데 말이죠 좀.. 다른 부류의 영화는 어때요?"

"재미없으셨군요.."

"아니아니! 재밌어요! 저도 따악 취향이 그거예요 하하"

"정말요? 현씨랑 저는 정말 잘 맞는것 같아요"

기뻐요. 하며 그는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읏.. 죄책감.. 나는 고어가 이제는 질린단 말이다! 이번에도 그 끔찍한 고어에 얼굴을 하얗게 뜬체로 3시간을 버티기는 싫었는데... 또겠구나..



영화 로고가 팟 하고 뜨고 그는 항상 똑같이 소파 팔걸이애 한쪽손을 올리고 까닥거리며 엄청나게 큰 텔레비젼 화면을 바라보았다. 영화가 시작할때면 그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것 같다. 평소에 보지못하는 짙은 눈동자와, 집중해야 들리는 가뿐 그의 호흡, 그리고 진득하게 오려진 입꼬리.

그런 그의 옆에 앉아있을때면 이상하게 슬금 옆으로 피하게 되었다. 건들이면 큰 일이라도 일어날것 같은 위험한 느낌에. 영화를 보고있다 눈을 돌려 그를 흘긋 거릴때 가끔씩 그가 그 눈동자로 나를 빤히 응시하는 것을 볼때면 식은땀이 절로 났다.

그럴때마다 아무렇지 않은척 영화에 집중하려 했지만. 그떄마다 내가 입은 얇은 병원복안까지 그의 시선이 들어와 내몸을 쓸며 만져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소름이 돋았다. 이상하게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러는 횟수가 늘어났지만 나는 나에게 딱히 아무짓도 하지 않는 그에 그러려니 하며 무시했는데... 오늘은 너무 심하다.


영화는 한창 중반부를 달리고 있었다. 이상하게 오늘 그는 영화를 보고있는게 아닌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직접적으로 그를 보지 못했지만 온 몸으로 느껴지는 이유모를 한기에 그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챘다.

소름이 우두두 돋아났다. 시끄러운 영화소리가 스킵되고 미약한 그의 가뿐 호흡이 크게 오버랩되어 들려왔다.



가죽으로 된 쇼파의 소리가 들렸다. 내 옆옆자리에 앉아있던 그가 내 쪽으로 몸을 붙인것이다. 쇼파가 살짝 꺼졌다. 나는 계속 모른척했다. 긴장한 나의 목에는 침이 한가득 고여있었다. 상혁이 가까이 오자 느껴지는 오한이 더 심해졌다. 나는 꿀꺽 하고 침을 삼켰다.



"너 정체가 뭐야"

"....!"


"분명히..분명히 넌 그사람이 아닌데"


바로 귀앞에서 속삭이는 낮은 목소리에 방심했던 나는 소리를 내버렸다. 나에게 계속 존댓말로 존중해주는 그의 말투가 아니였다. 지금의 그는 내가 아는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보였다. 나는 그를 쳐다보았다. 깁스된 툽툽한 팔과 다리가 아니였다면 난 이미 내 귀를 쥐고 저 멀리 도망쳤을것이다.


"저..갑자기 왜..왜러세요으.."


어느세 내 어깨에 그의 손이 올라왔다. 상혁의 얼굴이 내 얼굴 바로 앞에 있었다. 그의 가쁜 숨결이 나의 콧대를 건드렸다. 갑자기 이러는 이유가 뭔지 살짝 무서워졌다. 나는 고개를 뒤로 빼며 가까이 붙은 그와의 얼굴을 피하려 했다.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지..너무 닮았어. 생김새가.."


상혁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내 가슴을 어루만졌다. 뭔가 이상하게 분위기가 돌아가고 있다 생각되었다. 나는 엉덩이를 최대한 움직이며 쇼파 끝으로 이동하려 했다.


갑자기, 상혁이 내 뒷목을 잡고 다시 자기쪽으로 끌어당겼다. 그와 눈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쳤다.


"왜..왜이러시는지..! 장난이 조..좀 지나치시는데"


"....."

그는 빤히 나를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 했다. 목을 다시 뒤로 빼려했지만 단단히 내 머리통을 쥔 그의 손힘에 나를 손을 사용하여 빼내려 했지만 붕대로 칭칭 감긴 팔 다리를 기억하고는 체념했다.


"너무 닮았어.. 이럴수가 있나..?"


갑자기 닮았다느니 뭔 소리야! 뜬금없이 말하는 그의 말에 나는 지금 이게 뭔가 싶었다. 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내 머리를 쥔 손을 놓았다. 벙찐 나를 향해 느릿하게 웃음지었다.


"근데 그 사람은 내취향이 아닌데.. 넌 진짜 딱 내 취향이야 온몸에 전율이 돋을정도로"


그는 흥분하여 떨리는 손으로 내 머리카락을 잡고는 머리카락에 입을 진하게 맞췄다. 이상한 그의 행동에 필사적으로 엉덩이를 뒤로 밀던 나는 급기야 쇼파에서 떨어졌다.

"악!"

둔탁한 소리와 함께 바닥에 이상한 자세로 엎어진 나.

"아, 괜찮으신가요? 현씨?"


언제 돌아온건지 평소의 상현이 부드러운 손길로 바닥에 있던 나를 부축해줬다. 온몸에 있는 뼈가 울리는것같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죽을것 같은 느낌에 나는 굳은채로 상혁의 손에 몸을 맡겼다. 아파죽겠다. 나는 미간을 찌뿌리며 입술을 물었다.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잊으려 숨을 고르게 쉬려했다.


"하아...후.."


그떄, 나를 부축하던 그의 입에서 크게 가빠진 숨소리가 났다. 등에 다이는 그의 불끈 선 중심부가 느껴졌다. 뭐..뭐지 ..? 영화떄문인가...

그때의 나는 아무렇게 생각하지 않고 고어에 대한 특별한 취향을 가지고 있는 상혁이 영화때문에 그런줄 알고 넘어갔다. 그때 영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는 것을 모른체로..


이 이후 상혁은 나에게 이상한 행동을 하며 나에게 집착하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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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2-29 00:22 | 조회 : 2,557 목록
작가의 말
방학식

상혁 첫 만남은 후반에 쓸껄 그랬나봐요 하 너무 기네요 ㅠㅠ ... 쓰다가 끊고 중간중간에 넣어야 겠어요 이야기가 진행이 안되니.. 오타 죄송하구요!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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