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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컥-


"안녕하세요, 현씨"


나는 상혁의 목소리가 들리자 시계를 바라보았다. 정각 3시. 내가 누워 있는 침대쪽으로 걸어오는 그는 여전히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웃음을 짓고 있었다. 어제 나를 두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던 그가 신경쓰였다.

"아..네.. 안녕하세요 선생님"


나는 어색하게 형식적인 인사를 했다. 어제 잠시 보았던 그와는 역시 전혀 다른 지금의 상혁에 나는 정말 이 사람이 그사람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골똘히 생각하는 나를 응시하며 가벼운 미소를 띄는 그가 보였다. 그의 손에는 나를 태워가기 위한 휠체어가 있었다.

그래, 어제 보았던 무서운 상혁의 모습을 생각하며 쫄 필요 없다 이 현, 봐봐 지금 그는 무엇이든 다 용서하고 받아들일것 것은 천사같은 모습이잖아.

그와 가까워 지면 위험해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 일 하나로 이런 결정을 내린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정신적으로는 괜찮다 괜찮다 그냥 사람일 뿐이다 너가 다친것도 아니지 않느냐. 하고 생각했지만 신체적으로 내 온몸이 그를 피하라고 소리지르고 있었다.


평소라면 내가 그를 힘들게 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휠체어에 타려 할텐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침대에 그대로 앉아 자신의 눈을 마주치치도 않는 나에 그는 내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그리고 소곤히 내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현씨, 오늘 기분 안좋아요?"


"아니, 그..그건 아닌데요 "


"그럼?"


기운이 푹 빠져 웃지 않는 나에 그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두손으로 내 얼굴을 잡고 올렸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연한 갈색 눈동자가 따듯하게 나를 어루만지는 듯 했다. 그와 연을 끊으려 했던 내 마음이 점점 약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저 이제 영화 보고싶지 않아요"


"이제 정말 치료만 해주시면 좋겠어요"


"그..그러니까 이제 힘들게 오셔서 저랑 같이 있어주시지 않으셔도 되요!"


"하하하하...하하"

잠시 정적.






"...현씨"



영화를 그만보자고 말하는 내 말에 침묵을 지키던 그가 내 얼굴을 잡은 그 체로 말을 꺼넸다. 왠지 모르게 살짝 낮게 가라앉은 그의 목소리가 느껴졌다. 포근한 느낌을 주었던 그의 눈동자에 뚜렷히 힘이 들어가는 듯 했다. 그가 달라지고 있다. 나는 내 얼굴을 잡은 그의 손을 풀어내려 했다. 깁스한 팔을 힘겹게 들어올려 그의 손위에 얹었다.


"이..이것좀 놓으시죠"

팔에 무리가 갈까 세게 칠수도 없었다. 깁스된 두툼한 손으로 그의 손을 밀었다. 그러나 전혀 손을 땐 기미 없이 오히려 힘을 주는 그에 나는 불안해 졌다. 뚜렷하게 선이 살아난 그의 눈동자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에 세뇌당할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아까전까지 천사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얼굴에는 이미 웃음기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현씨 갑자기 왜 이러세요, 비겁하게"


"네..? 네??"


아니 그냥 영화 같이 안보자는게 그렇게 충격적인 일인가. 갑자기 돌변한 그에 나는 당황스러워졌다. 항상 웃는 얼굴만 봐서 몰랐는데 무표정으로 낮게 읆조리니까 흠칫 하고 놀랄정도로 무서웠다.

"아..아니 그 상혁씨가 싫은건 아니고.."


"그럼 뭐예요? 저번에 영화도 좋다면서"


" 사..상혁 선생님은 분명 바쁘실텐데 저한테 매일 시간 투자하시면 안되잖아요.."


"제가 시간이 남는다고 했잖아요"


"..그..그 시간에 더 주..주무시지"


"제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제가 정해요 현씨. 전 현씨하고 있는게 좋아요"


"저..저도 좋은데.."

나에게로 가까워지는 상혁의 얼굴에 나는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그의 손이 단단히 내 얼굴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나는 잔뜩 고인 침을 꿀꺽 삼켰다. 점점 가까워 지는 그의 얼굴이 무서웠다. 온 몸이 단단히 경직되었다.


"그럼 뭐예요? 나랑 약속했잖아 현아 영화 같이 보자고"


"그..그랬었죠"


" 그럼 그런말 하지마 어짜피 조금만 버티면...병원도 나갈텐데?"


일주일 하고 반이 지났으니 퇴원하기 2주밖에 남지 않은 셈이다. 2..2주동안이면 괜찮을 것 같기도 하고.. 하며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합리화를 했다. 그의 숨소리가 들렸다. 상혁은 자신의 입술을 혀로 느릿하고 진하게 햝았다. 관능적인 그의 표정에 동공이 흔들렸다.


"농담이예요!!!노..농담! 하하"


큰 소리로 농담이라 외쳤다. 어제 보았던 그의 모습으로 상혁이 완전히 변해버리기 전에 다시 원상태로 그가 돌아오게 해야한다는 생각이들었다. 배쪽에 서늘한 느낌이들었다. 눈동자를 움직여 확인해보니 그의 왼 손이 내 병원복을 들추고 내 배를 손으로 쓸어내리고 있었다. 차가운 손에 소름이 돋았다. 민감한 배를 쓰다듬는 그의 손을 김스한 팔로 잡았다.


"농담! 농담이예요 상혁 선생님이랑 영화 보고싶어요.."


필사적으로 외치며 눈을 질끈 감았다. 눈을 뜨면 바로 앞에 있을 그의 얼굴이 두려워져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몇초 안되지만 체감으로는 몇시간이 흐른듯한 시간이 지났다. 나는 눈을 게슴츠레 떴다.


"현씨, 제가 옮겨드릴게요, 팔 조심하시고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원래대로의 모습으로 돌아온 상혁이 휠체어 손잡이를 들고 나를 바라보며 웃고있었다. 금방과 완전히 다른 그의 모습에 나는 벙찐체로 앉아있었다. 그는 내 몸이 무겁지도 않은지 나를 번쩍 들어 휠체어에 앉혔다. 금방까지 긴장했던 내 몸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나는 들쳐친 병원복 상의를 다시 내렸다.

배에 아직 그의 서늘한 손의 촉감이 느껴졌다. 어쩌다 이런 미친 사람한테 걸렸지...



"현씨, 저 너무 싫어하진 말아주세요. 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휠체어를 끌면서 그가 말했다. 부드러운 그의 목소리가 지금은 악마의 목소리로 들려왔다.

"알아요. 상혁 선생님은 나쁜 사람 아니예요"


"어제 일은, 그냥 현씨를 닮은 사람이 있어서 확인해 본겁니다"


"...이해해요"


내가 괜히 예민하게 군 것일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그냥 아 닮았네 하고 확인한 것일지도 모르지 않느냐. 영화 취향은 좀 이해하기 힘들지만..


"영화를 보면서 막 사람들에게 직접 해보고 싶다. 이런생각, 한적 없어요"

귓가에 살짝살짝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가 그를 싫어하는 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계속 중얼거렸다.


"현씨 만나고 나서부터는 영화보면서 자위하는 거. 그만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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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6-02-29 20:50 | 조회 : 2,592 목록
작가의 말
방학식

엄크..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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