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13년 전, 첫 침입자의 뒷모습.

주변에 힘 없이 몸을 바닥에 늘어뜨리고 있는 사람들. 깨진 머리에서 흐르는 피가 시야를 가리고, 감기는 눈을 쉴세없이 손으로 문질렀다. 온 몸이 시릴듯이 차가운 달빛 아래, 호흡 하나 달라지지 않은 채, 곧게 서있던 남자. 그가 고개를 돌렸을때 잠시 마주쳤던 눈빛이 상혁을 찢을듯한 살기에 감싸게 만들었다.


잊혀지지 않는 그때의 기억. 13년 전 침입자..

상혁은 허리에 올려두었던 양 손에 힘을 주었다. 그의 앞에서 숨을 헐떡이며 땀을 닦던 관리부 팀원은 아무 말이 없는 그의 눈치를 보고있었다.

'정말 그때의 그가 맞다면...'


상혁은 소매를 걷어 손목에 달려있던 기어를 꺼냈다.

"차"

입으로 가져다, 짫은 명령어를 빠르게 하고는, 상혁은 급히 뒤돌아 왔던 사막언덕 사이의 길을 걸었다. 관리부 팀원은 갑자기 떠나는 그의 행동에 당황한듯 헛손질을 했다. 그러나, 체력 부족인지 상혁의 걸음을 따라올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저 멀리서 상혁을 향해 달려오는 하얀 리무진. 운전사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상혁은 급하게 문을 열고 머리를 들이 밀었다. 모래 바람에 온 몸이 뒤덮인 상혁은 옷을 털 생각도 하지 않았다.

"내가 항상 가던 거주지 존으로 가줘"



저 멀리 빠른 속도로 모래를 헤치며 나아가는 리무진을 바라보던 팀원.

"상혁군이 가버리면,,누가 치료를 해준답 말입니까.. 크흡..!...그리고 데이터가 덜 파괴된 cctv 테이프 하나가 있다고..."

팀원은 끝내 그에게 말하지 못했던 말들을 중얼거리며 지릿거리는 온 몸을 지탱하며 그곳에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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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거리를 다시 돌아가는 이현. 세게 불어오는 바람에 입을 티셔츠의 목부분을 코까지 끌어당겼다.

" 감기걸릴거 같아.."

머리까지 차오른 재채기의 기운이 코를 간질거렸다. 자신이 사는 낡은 아파트 단지에 들어온 이현은 오늘 쓸 글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생각 나지 않는 소재에 머리를 헝클였다.


"하..난 대체 왜이럴까 ... ..으..읍!!?"

"쉿"


불평을 늘어놓던 이현의 입을 갑자기 막는 누군가의 손길. 순식간에 이현의 목을 세게 감싸안은 누군가가 그를 단지 깊숙한 골목으로 이현을 끌었다. 이현은 온몸에 돋아오르는 순간적인 공포에 휩싸여 필사적으로 다리를 비틀었다.

그럴수록 점점 조여들어오는 목에 이현은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심심하면 이 동네쪽으로 와서 괴롭히며 노는 kara의 군인들일까, 아니면 코 묻은 돈이라도 빼앗아 부지하는 조폭들일까. 둘중 한명이든 누구이든 자신에게 좋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것이라는 예감이 이현의 머리를 찌르고 지나갔다.

이현의 머리를 부술듯 움켜쥔 누군가의 손이 아려왔다. 이현의 뒤에서 그를 끌고 가는 거기에, 누군지 얼굴을 볼 틈도 없이 순식간에 햇빛이 가려진 어두운 골목틈으로 와버렸다. 그 누군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는 듯,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그제서야 이현의 목과 입을 잡고있던 손을 놓았다.


"헉...헉..우..우웩..! 대..대체 누구신데..."

풀려나자 마자 바닥에 쓰러져 턱끝까지 막혔던 숨을 몰아쉬며 헛구역질을 하는 이현. 그런 그의 뒤에서 두 손을 터는 누군가의 소리가 선명히 들려왔다 .

"럭키, 난 운이 정말 좋단 말이야"

남자의 목소리. 그는 이현의 앞에 가까이 밀착되도록 앉았다. 그리고는 숙이고 있는 이현의 얼굴을 한손으로 들어올려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

이현은 고개를 들자마자 바로 가까이 있는 얼굴에 깜짝 놀라 뒤로 떨어지려 했으나, 그의 나머지 한 손이 뒷 머리를 세게 부여잡아 뒤로 가지 못하게 꽉 잡고있었다.

이현의 앞에는... 정확히 그와 똑같은 생김새의 얼굴이 있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는 자신과 똑같은 남자의 숨결이 이현의 얼굴에 세세하게 느껴졌다. 발끝까지 돋은 소름. 혼란스러운 마음의 이현의 눈동자가 쉴세없이 흔들렸다.

다시한번 얼굴을 흩어보아도 자신이다. 눈, 코, 입 하나하나 거울 속에 비쳐진 그의 모습과 똑같았다. 그러나, 헥헥 대며 식은 땀을 흘리는 자신과 다르게, 그는 여유로운 얼굴로 옅은 미소를 띄우며 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제 새벽부터 찾아다녔어, 어쩐지 유독 여기오니까 막 짜릿하고 ..."

눈 앞 그는 이현의 귀에 입을 밀착하고 속삭였다. 귀가 뜨거운 숨으로 데워지고있었고, 간지러워 당장이라도 그의 얼굴을 밀어내고 싶었다. 두 손으로 힘껏 자신의 머리 뒤를 잡은 그의 손을 떼어내려 했지만, 도저히 떨어질 가망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현은 머릿속이 복잡하게 뒤섞이고 있는것을 느꼈다.

'너..너무 나하고 똑같이 생겼잖아..'


"여기 온지 하루만에 만났으니까, 빠르게 빠르게 가자구"

그는 일어나 이현의 손을 잡고 강제로 일으켰다. 자신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막대한 힘에 이현은 그에게 속절없이 끌려갔다.

"어딜 가는거죠?.. 전 집말고 갈 곳이 따로 없는데요"

이현의 이마를 둥글게 타고 내리는 식은땀. 현은 그것을 소매로 벅벅 문질러 닦고는 자신의 손목을 세게 잡아오는 그에게 말했다.


"응? 너 설마 여기서 계속 살고 싶은거야?"


"네?"


"별 이상한 놈이네...아 이러니까 날 욕하는거 같잖아"

그는 세게 부여잡고있던 이현의 손을 놓았다. 똑같이 일어서보니, 자신과 키까지 똑같았다. 그러나, 그의 온 몸 두드러지게 박혀져 있는 근육들, 살짝 건강하게 탄 피부, 편하게 걸친 민소매 나시와 트레이닝 바지를 입은 몸에서 간간히 드러나는 흉터 자극들은 상혁이 낸 흉터들, 메마르고, 햇빛을 보지 않아 희멀건 피부색의 이현과는 달랐다. 이러한 차이점이 없다면, 완전히 똑같은 자라고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똑같아 보였다.


"...그래 좀 갑작스러울 수도 있을거라 생각은 했어.. 근데 난 시간이 없다고, 제길"


그는 말끔히 정리되있던 머리를 한손으로 비볐다. 그리곤 빨갛게 부은 손목을 쥐고있는 이현에게 다가왔다.


" 일단... 내 이름은 베키야, 넌 이름이 뭐야?"


'베키..? 생긴건 동양인같은데.. 개이름 같기도 하고..'

이현은 자신을 말을 건네는 베키를 멍하니 바라보며, 머릿속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이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현의 앞에 서있던 베키는 말이 없는 이현의 태도가 맘에 들지 않는듯, 그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야, 해코지 하려고 그런거 아니니까 겁먹지마. 우리들은 서로 뭉쳐야 할 사이라고"

"... 저는 이 현이라고 하는데.."

"이 현? 되게 멋진 이름이네"


베키는 이현의 이름을 듣자 웃으면서 얘기했다. 시원하게 웃으며 등을 토닥이는 베키의 손은... 좀 아팠다.


그때, 저 멀리서 달리는 차의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점점 이곳과 가까워 지는 소리에 베키는 귀를 귀울이다, 이현을 골목 벽으로 밀착 시켰다. 이현은 갑자기 소리에 이러는 그가 당황스러워 거부하려 했으나, 베키의 단단한 몸으로 자신을 누르니 돌덩이가 올라간듯, 움직일 수가없었다.


"여기서 부터는 혼자 갈꺼니, 약 1시간 정도 후 여기로 다시 오세요"

벽에 납작히 눌려져(?)있던 이현은 여기서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에서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목소리는 이현이 잘 아는 목소리였다. 상혁의 평소 목소리. 그가 이곳에 오는 이유는 단 하나, 자신을 찾으러 온 것일 것이다. 그러나 평소 해가 지고, 저녁 시간대가 되야 보통 오던 그가 저녁시간대도 되지 않은 지금 시간이 온것일까? 이현은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눈동자를 굴리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베키는 상혁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더이상 이 골목길에 들리지 않을 때까지 기다리다, 이현의 귓가에 입을 가져가 되고, 조용히 말했다.


"더 이상 끌 시간이 없어.. 그들은 금방 쫒아올꺼야. 아무리 나라도..널 데리고 있는 이상 저들을 막기엔 나도 어려워"

이현으로써는 이해가 되지 않는 말들을 베키는 계속 중얼 거렸다 .이현은 간지러운 귓가를 어깨에 부비며 벽에서 짓눌린 볼을 떼어내었다. 베키는 여태 껏 본중 제일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너, 나랑 같이 가자. 너가 필요해."


"뭐라고..?"


"솔직히 너, 계속 여기서 살고 싶은거야? 여기는 머리가 빈 내가 보아도 지옥같은 곳인걸?"


"..."

"돈 많은 돼지들의 손에 놀아나는게 좋냐고"


"그래도 난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을 따라갈 수는 없어..게다가 넌.."

'너무 나랑 똑같이 생겨서 더 수상해'


베키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황당한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이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현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더니, 간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야...난 혼자라고..응?"


계속 어디로 가자는건지. 이현은 전혀 맥락이 맞지 않는 베키의 말에 어떤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말하느라 힘이 풀린 베키의 팔을 보고는, 이현은 이때다, 싶은 마음에 이 골목길을 벗어날 생각을 했다 .


"너가 날 따라오면 내가 젤 아끼는 레몬 젤리....야!!!"


이현은 필사의 힘을 다해 골목길의 바깥 부분을 향해 달렸다. 목덜미가 그의 한손에 다시 잡혔었지만, 이현의 미끄러운 땀 덕분인지, 손이 바로 미끄러졌다. 이현은 급히 달아오르는 숨을 헉헉대며, 드디어 골목길 부근으로 뛰어나왔다. 그리고, 저 멀리 금방 난 베키의 소리에 이 곳을 향해 다가오는 상혁을 보았다.


"이현 씨!!!"


이현은 자기 뒤에서 무섭도록 달려오는 베키가 상혁의 목소리에 주춤대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는 이현은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상혁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갔다.

상혁은 다가오는 이현의 손을 깍지 끼워 마주잡고는 이곳을 향해 달려오던 베키를 노려보았다. 아까운 거리에서 이현을 놓친 베키는 이현을 숨긴 상혁을 아니꼽게 쳐다보았다.


"kara제복이라... 그래, 오늘은 그도 놀랐을테니.. 야 이현"

"..."

"말 걸지 말고 저리 꺼져"

상혁은 이현에게 말을하려는 베키가 보기도 싫은지 평소에 내던 존댓말을 하지않고, 위협적인 목소리로 낮게 말했다. 베키는 뒤로 돌아서며 천천히 멀어져 가며 말했다."


"하루의 시간을 줄게, 정말 빠르게 결정해야할 꺼야. 난 정말 시간이 없거든"


"꺼지라고"

상혁은 으르렁 대듯 말했다. 천천히 멀어져 가던 베키는 사람이 도저히 넘을수 없을 정도로 높은 4미터 가량의 담을 눈 깜빡하도록 빠르게 타고 넘어갔다. 순식간에 와서 순식간에 사라진 베키에 이현은 긴장되어있던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이현은 자신의 손을 깍지껴 잡고있던 상혁의 손을 놓으려 했으나, 상혁은 아프도록 이현의 손을 세게 쥐었다. 이현은 뼈가 부러질듯한 압박에 상혁을 쳤으나, 상혁은 미동 없이 이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상혁은 세게 쥔 이현의 손을 놓지 않은 체, 이현의 집으로 끌고갔다. 자신의 손을 아프게 잡아오는 상혁에 이현은 제발 놓아줬으면 좋겠다는 일념을 가지고, 고통에 벌벌 떨리는 입술을 하며 힘없이 따라갔다. 상혁은 이현의 집 문을 거칠게 열고는 이현을 밀어넣었다.


"필요한거 몇개만 챙겨"


"...왜"


상혁은 이현의 말에 대답 하나 해주지 않고는, 주변에 놓여져 있던 이현의 낡은 가방을 들어 거칠게 집에 있는 물건들을 쑤셔넣었다. 이현은 갑자기 이러는 상혁이 이해가 가지 않아, 상혁에게 계속 왜 그러냐 보채었다. 상혁은 빠른 손으로 이곳 저곳 물건을 대충 챙기고는 다시 이현의 손을 잡고 집을 나갔다.


단지 앞, 상혁을 기다리는 하얀 리무진에 이현을 억지로 넣은 상혁. 이현은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급박하게 이러는 상혁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차에 타고나서야 진정이 된듯 숨을 고르는 상혁. 상혁은 그제서야 눈에 돌던 분을 가라앉히고는 이현을 바라보았다.


"잠시만 잠들어 있으세요... 죄송합니다 현씨"


순간 자신의 명치를 세게 쳐오는 상혁의 주먹에 눈 앞이 하얗게 변해오는 것을 느꼈다. 온 몸에 울리는 고통에 이현은 흐려져 가는 시야에도 상혁의 팔을 툭툭 치며 말했다.


"이....이..개새끼야..."


욕을 중얼거리며 기절한 이현을 얕은 미소 지으며 바라보던 상혁. 상혁은 이현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위에 올리곤 운전사에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소유 중, 이 곳과 제일 떨어진 별장으로 가지"


"네"


멈춰있던 리무진이 적막에 잠겨 있던 도로를 뚫고 달렸다. 상혁과 이현이 탄 리무진이 그 아파트 단지에서 빠른 속도로 멀어진다. 높은 상가 옥상 난간에서 턱을 괴고는, 멀어져 가는 자동차를 바라보는 베키. 베키는 검은 민소매티에 묻은 흙모래를 시큰둥하게 털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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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7-06-11 18:17 | 조회 : 1,556 목록
작가의 말
방학식

이현은 언제까지 맞아야하나요 ㅠㅠ 고통받는 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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