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이별?

“뭐? 헤어지자니?”



오랜만에 본 연인의 입에서 처음으로 나온 말이 이런 것일 거라고 누가 생각했을까.
그야 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왜, 내게 미안해서?”



연우는 그의 시선을 피하던 눈을 조금 움직였다.
연우는 천천히 그를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생각해봤어.”



연우는 드디어 입을 열었다.



“너는 내 신경을 써주느라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못한 적이 많아. 그때도 나 때문에 요즘 우리 사이가 소홀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못한 거잖아.”



그는 또 가슴이 아려 오면서 울컥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눈물을 꾹 참았다.그리고 진정된 후에 다시 말을 이었다.



“생각해보니 정말 내가 너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줬더라고. 오죽하면 네가 참다 못해 말을 꺼냈을 까.”
“연우야, 그건 그냥…….”

“우리……이대로면 안돼. 넌 항상 내게 헌신하고, 난 항상 네게 의존만 할 테니까. 그렇다고 내가 뭘 해주는 것도 없고.”



연우는 옷소매를 눈물을 닦고 말을 이었다.



“난 아마 평생 이렇게 밖에 못살 거야. 고칠 수가 없는 걸. 그러다 보면 넌 내게 맞춰주느라 지치고, 난 네 도움이 필요하니까 계속 매달리고…….”



이대로면 병적으로 민운에게 집착하게 될 거라는 걸, 정말 그 없이는 살 수 없게 될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그렇게 되기 전에 이 관계를 끝내는 게 두 사람에게 모두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 안되는 거야?”



반대로 민운은 그런 식으로 끝내 버리면 오히려 두 사람에게 좋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그때 내가 한 말, 너 때문이 아니야. 자주 못 만나도 네가 항상 연락해주니까 난 좋았어. 나 보려고 일부러 시간 내서 회사까지 찾아오는 것도 너무 고마웠다고.”

“난 너와 함께 있을 때도 이준 얘기만 했어."
“……그땐 네가 신경 쓸 만 했잖아. 게다가 먼저 얘기를 꺼낸 건 나 아니야?”



민운은 그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생각이었지만, 오히려 더욱 부담이 되어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인이 잘못했으면 했지, 자신의 잘못은 아니라고 해주는 격이니 연우는 더 미안해지기만 했다.



“역시 난 받는 것에만 익숙해서…….”
“아니, 이야기가 왜 그렇게 돼?”

“……그래서 네 입장도 고려하지 못하니까.”
“지금 네 말만 들어봐도 넌 충분히 내 생각 해주고 있어.”

“아니……아니야, 아니야…….”



연우는 ‘아니’라는 말만 반복하며, 지끈거리는 머리를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동안 잘 해왔잖아.”



민운이 걱정되는 마음에 연우 옆으로 조금 다가와, 그의 뺨을 천천히 만지며 자신을 보게 했다.
연우는 따뜻한 손길에 괜찮아지나 싶더니, 그의 손을 잡아 뺨에서 떼어내며 말했다.



“……우린 그동안 서로 간의 문제를 원만하게 해결해온 게 아니야. 서로 입을 다물고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것뿐이지.”
“…….”
“언제는 이야기를 꺼내서 해결했다고 해도, 그것도 각자 눈치껏 행동한 거지, 실제로 문제에 깊게 파고든 적도 없잖아.”



민운은 연우의 행동, 표정 등에 불안감이 커졌다.
가슴도 그 불안함에 크게 요동쳤다.



“연우야…….”
“내가 정상적인 사람이었으면 그러지 않았을 거야. 적어도 이러진 않았을 거야…….”

“자꾸 그런 식으로 스스로를 폄하하지마.”
“난 머릿속으로는 알아도 행동을 못하고, 그건 앞으로도 똑같겠지.”



연우는 머리로는 매번 외치지만 몸은 따라주지 못하는 무력감, 비참함에 헛웃음이 나와버렸다.



“우리가 사귀는 동안에 이런 식으로 어물쩍 넘어가기만 하고, 해결한 것 같지만 해결하지 못한 그런 일이 얼마나 더 일어날 것 같아?”



민운이 몇 번을 부르고, 어르고 달래 보려 해도, 연우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난 그런 거 싫어. 이런 식으로 너랑 사귀는 건 싫어…….”



연우가 바라왔던,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삶은 무엇이었을 까.
그는 적어도 이런 건 바라지 않았다.

보통은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들으면, 영화나 소설을 보면 다들 로맨틱하다, 좋은 사랑이다 하지만…….
다들 좋겠다며 부러워하는 대상인 연우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보다.


민운은 그런 그를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하고 싶은 건 아니다.
그래서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돌려야 하는데, 평소처럼 제대로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는 게 이토록 어려운 적이 없었다. 그는 언제나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이었지만, 이번만큼은 전혀 아니었다.



“연우야, 난 단 한번도 널 탓 하지도 억지로 배려한 적도 없어. 네가 좋아서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내가 한 일이 아닌 게 되는 것도 아니잖아.”



민운은 연우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 지, 어떻게 연우의 마음을 돌릴 지, 지금 이 대화에서 왜 이렇게 자신이 없는 건지, 생각할 거리가 많아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이런 나 때문에 네가 고생하는 게 싫어.”
“……나는 너랑 헤어지는 게 더 싫어. 상상하기도 싫어.”



그는 아까 보다 더 기운이 없는 목소리였다.

연우도 그의 맥 빠진 목소리에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가 자신과 겪을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어쩌면 금방 괜찮아질 지도 몰라.”
“아니……아니야. 괜찮지 않아.”



민운은 고개를 조금 들어 애원하듯 말했다.

연우는 간절한 그의 시선을 피했다.
더는 그와 마주보기가 힘들었다.


이제 대화를 끝낼 시간이다.





“괜찮을 거야. 나보다 더 좋은 사람은 많으니까.”



민운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이 굳었다.
슬픈 눈을 하고서 억지로 미소를 지으려 하는 연우의 그 모습과 말이 어릴 적 그렇게 따랐던 사람과 겹쳐 보였다.
갑자기 심장이 아려 왔다.

민운은 무겁게 붙어서 떨고 만 있는 입술을 간신히 떼어 말했다.



“……그런 말 듣는 건 한번이면 돼. 너까지 그러지마.”



두 사람이 너무 비슷해 보여서, 잊고 싶었던 기억들까지 떠올라 머리가 더 아프다.
연우는 그런 그를 뒤로 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내가 못 견디겠어.”



그는 마지막까지 민운을 보지 않았다.



“넌 괜찮을 지 몰라도……내가 마음이 쓰여서 더는 같이 못 있겠어.”



그를 보지 않으려 뒤를 돌아서 마지막 말을 하고 떠나버린 연우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을 지 잘 알 수 없었다.





“우리, 조금만 시간을 갖자.”






하지만 울음을 참으며 떨고 있는 어깨에서 수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민운은 그 뒷모습을 끝으로, 연우를 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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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19 22:00 | 조회 : 1,701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민운 : 뭐라도 좋으니 말 좀 해봐 / 연우 : 헤어져 / 민운 : 그건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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