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상사병

그 뒤로 한달이 지났다.

일주일 후면 다시 새학기가 시작된다.

나래 기업에서 하던 1, 2학년을 대상 멘토링 프로그램 또한 며칠 전에 끝났다.

이준은 부팀장과 그에게 많은 조언을 해준 디자인 팀원들 모두에게 감사인사를 전하고 떠났다.

아이리스는 아직 카페에서 평일, 주말 모두 알바를 하고 있다.

학기가 시작되면 주말과 평일 저녁에만 할 예정이라고 한다.

“……심심하네요.”

“왜요?”

아이리스는 카페 점원과 함께 카운터 앞에 앉아 말했다.

점심 시간인데 손님이 한 두 팀 밖에 없었다.

이미 손님이 주문한 음료도 다 만들어서 갖다 드렸고, 매장 청소도 마쳤다. 설거지도 오래 전에 끝냈고 빵 진열도 완벽하다.

손님이 너무 없어 할 일이 금방 끝나버리니 많이 지루해 보였다.

“아무도 안 오니까요.”

아이리스는 괜히 영수증만 만지작거렸다.

카페에 손님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한 때 자주 왔던 그 사람들이 이 카페의 매출과 분위기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는 줄은 몰랐다.

“연우 오빠, 백민운도 안 오고, 한 때 매일 와서 죽치고 앉아있던 이준 오빠도 없고……심지어 디자인팀에서도 뜸하잖아요.”

“하긴, 조금 썰렁한 느낌이 드네요.”

“단체로 병 걸린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갑자기 안 오면 어떡해.”

아이리스는 마음에 안 드는 듯 인상을 확 찌푸렸다.

‘이게 다 백민운 때문이야…….’

그리고 아이리스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점원이 중얼거렸다.

“확실히 사장님은 요즘 몸이 안 좋으신 것 같더라고요.”

점원은 조심스레 물었다.

“민예씨는 아는 거 있어요?”

아이리스는 점원을 조금 쳐다보더니,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렸다. 그리고 크게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그거 상사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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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

한편, 사장실 안의 상황이다.

“이봐요, 사장님.”

강 비서는 피곤에 절여 있었다.

몸이 피곤한 게 아니라, 정신이 피곤해 보였다.

그는 이 모든 게 자기 앞에 있는 놈 때문이라고 여겼다.

“얌마.”

책상 위에 엄청나게 쌓인 서류들 속에서 민운은 펜을 잡고 온종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아니, 아무 생각도 없이 멍하니 있는 것 같다.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기에 강 비서는 파일을 책상 위에 내리 찍었다.

“야!!!”

“아, 깜짝이야!”

“내가 너 몇 번 불렀는 지 알아? 정신 안 챙기냐?”

강 비서는 한숨을 쉬며 팔짱을 꼈다.

“……일하고 있었으니 못 들은 거지.”

“너 멍 때리고 있었거든.”

“아무튼……무슨 일인데?”

민운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물었다.

강 비서는 그런 그를 말 없이 잠시동안 쳐다봤다.

그 또한 강 비서 못지 않게 피곤해 보였다. 건드리면 잡아먹을 듯 눈빛도 날카로웠고, 잠을 이루지 못한 건지 눈 밑에 다크서클도 심했다.

“내일 모레 회의 있는 거 알지? 정신 챙기라고 새꺄, 준비는 다 했냐?”

“……했어. 걱정하지 마.”

민운은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앞에 놓인 서류를 들어 읽더니, 다시 일을 시작하려는 듯 펜을 집어 들었다.

그 순간 강 비서는 그가 든 펜을 바로 낚아 채며 소리를 쳤다.

“잠도 좀 처 자고! 다크서클이 턱밑까지 내려 왔어!”

“…….”

민운은 펜을 빼앗기자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조용히 옆에 놓인 필통에서 펜을 하나 꺼냈다.

하지만 그것도 곧바로 다시 뺏겼다.

“일하지 말고 휴게실 가서 잠이나 자!”

“……점심시간 끝났어.”

강 비서가 아무리 애원하며 자라고 해도,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야, 살다 보면 싸우고 헤어지기도 하는 거지! 너 계속 이럴래?”

“……헤어진 건 아니거든?”

“아, 그래? 헤어진 게 아니어서 한달 동안 연락도 안하고, 만나지도 않고, 맨날 울상이야?”

“아……제발……시비 걸지마…….”

민운은 고개를 푹 숙여 이마를 짚었다.

방금 강 비서가 한 말로 인해 안 그래도 없던 기운이 더 빠졌다.

화가 나서 던진 말에 꽤 큰 상처를 받은 것 같아 그는 살짝 미안해졌다.

강 비서는 그의 상태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너 지금 그때랑 똑같은 거 알아?”

“…….”

이젠 오래된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기억에서 흐릿해 진 건 아니다. 강 비서는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몸살이 날 것만 같다고 하니까 말이다.

“아침부터 일만 하고, 밥도 안 처먹고, 밤새도록 일하다가 또 아침 되고. 너 그러다가 쓰러져!”

지금도 거의 비슷하다.

하루 종일 붙어 있으면서 건강 챙겨주고, 잠도 챙겨주고, 업무도 일정 이상 못하게 막고 있다.

지금 그는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지만 없던 일도 만들어 와서 하고 있어서, 강 비서는 매일매일 지옥을 맛보고 있다.

“남은 건 내가 할 테니까, 넌 가서 쪽잠이라도 자고 와.”

강 비서는 그의 팔을 붙잡고 일으켰다. 직접 휴게실까지 모셔다 줄 생각이다.

그는 이럴 때마다 연우가 미워 죽겠다며 호소한다.

그 옛날에 병적일 정도로 일에 매달렸을 때는 차라리 어렸을 적 컸던 정신적 충격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도, 지금은 전혀 그렇게는 생각 못하겠다.

‘다신 못 보는 것도 아니고 잘 살아있는 것도 뻔히 알면서, 저렇게 나약해서 어떻게 사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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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2-22 22:25 | 조회 : 1,672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강 비서 : 우울하면 놀아야지 쟨 왜 나까지 귀찮아지게 일을 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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