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누가 좀 나서봐

최 대리만 쓸데없이 깊게 고민에 빠진 세 사람을 한심하게 쳐다봤다.

반대편의 두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부팀장이 뭘 고민하고 있는지는 알 것 같았다.

부팀장은 자신과 다르게 민운과 연우가 사귀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부팀장 대신 입을 열었다.

“둘이 싸운 건가 해서요. 엄청 친하잖아요. 우리 사장님 친구가 연우씨 밖에 없는데.”

“아~ 친하긴 친하죠! 연우 형도 그렇게 마음 맞는 친구가 없대요~!”

최 대리의 대답에 윤우는 눈이 반짝이며 고민이 풀린 듯 화색이 돋았다.

‘아, 다행이다. 친구끼리 싸운 걸 줄 알고 물으시는 거구나……!’

부팀장도 최 대리 덕에 한숨 돌리고 웃음을 지었다.

‘휴……괜히 겁먹었네. 연우씨가 친구들에게 들킨 것 같지도 않고.’

이제 일이 쉬워졌다는 생각에 부팀장은 다시 한 번 물었다.

학생들이 싸웠다고 얘기하면 최소한 연락 두절인 것이니, 연우에게 죽고 못사는 사장님이 그런 상태일 만 한 것이다.

“그러면 싸운 게 맞는 거에요?”

현은 조금 생각하나 싶더니 무의식적으로 말을 뱉었다.

“싸웠다기 보단……절……억!”

“야! 재수없게 그런 말 하지 마!”

윤우는 화들짝 놀라, 현의 등짝을 세게 치며 입을 다물게 했다.

“저……절교요?”

부팀장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되물었다.

이 아이들이 굳이 절교라고 말한 이유라면, 헤어진 것 밖에 답이 더 있겠나 싶었다.

‘설마 헤어진 거야……?’

부팀장은 한번 더 확인해야 했다.

“연우씨한테 들은 얘기는 없어요? 둘이 정말 싸운 거에요?”

“아, 그……얘기를 명확히 해주지 않아서…….”

“공모전도 이미 다 끝난 상태라서 거의 만나지도 않았고.”

아주 조금이라도 희망적인 내용을 듣고 싶었지만, 불가능해 보였다.

연우는 자신의 친한 친구에게도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들도 직접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면, 부팀장과 최대리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윤우는 음침한 분위기를 읽고, 나름 밝게 만들어 보려고 애썼다. 현도 그에 거들었다.

“에이, 뭐! 금방 화해하겠죠!”

“하하, 그럼요. 원래 친구끼리 싸우면서 친해지는 거죠!”

둘은 미소를 지으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더 침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아, 진짜 어떡해……두 사람 그냥 친구사이 아니에요…….’

‘금방 화해할 일이었음 그쪽 사장님께서 그러시겠어…….’

-----

늦은 오후부터 하늘에 구름이 잔뜩 끼어 흐릿하더니, 저녁이 되자 비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저 늦은 장마가 아니길 빌 뿐이었다.

연우도 가만히 소파에 앉아 베란다 밖에서 비가 내리는 것을 보고 있었다.

한참 빗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기나 싶더니, 곧 벌떡 일어나 신발을 신고 우산을 챙겼다.

연우의 양부모는 그가 비가 쏟아지는데 혼자 외출을 하려고 하니 이상하게 여겨 물었다.

“연우야, 비 오는데 어디 가니?”

“잠깐 걷다가 오려고요.”

화창했던 낮에는 밖에 나갈 생각이 없어 보이더니, 비가 오니 나가려는 행동이 의아했다.

그들은 행여나 연우가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되어 말렸다.

연우는 개도 안 걸린다는 여름 감기를 매년 독하게 걸려 끙끙 앓기 때문이었다.

“비가 많이 쏟아지는데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나가.”

“그럼 외투 하나 챙겨 갈게요.”

연우는 여름 감기는 이미 걸렸다가 깨끗이 나았으니 괜찮지 않냐며 한사코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누구도 그 고집은 꺾을 수 없었다.

“……그래, 조심히 갔다 와.”

연우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마자, 그의 양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며 거실로 돌아갔다.

“어휴……연우 또 감기 걸리면 어떡해. 우린 이미 개학해버려서 간호도 못해주는데…….”

대게 8월 말에서 9월 초에 개강하는 대학교와 다르게, 그의 양부모가 교사로 일하고 있는 중고등학교는 8월 중순에 이미 개학을 한 상태이다.

양어머니는 이미 연우가 감기에 또 걸릴 것이라고 확신한 것 같다. 양아버지도 분명 연우가 멀쩡하게 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대체 왜 헤어진 거래, 아주 좋아 죽더니.”

“연우도 나름 고심해서 결정한 거니까……우리가 뭐라 할 수는 없지.”

약 한달 전, 조금 다퉜다고 일주일이 넘도록 집에 들어오지 않은 것부터 영 느낌이 좋지 않았다.

겨우 집에 들어온 연우의 몰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고, 며칠 동안 음식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하루의 절반을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있기만 했고, 드라마를 보다가 남녀주인공이 이별하는 것만 봐도 눈물을 뚝뚝 흘려서 한동안 암묵적으로 드라마 시청도 금지되었다.

특히 그는 비가 오는 날이면, 항상 바깥을 바라보는 시간이 길었다.

불러도 대답도 않고 멍하니 앉아 비가 내리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저렇게 힘들어 할 거면서.”

양아버지는 안타까운 듯 말했다.

할 수 있다면 자신이 조금이라도 도와주고 싶었다.

그는 아내를 쳐다봤다.

“……애들 일에 끼어들면 조금 그런가?”

“왜?”

“내가 겪어봤으니까. 연우가 당신을 닮은 건지, 좋아하는데도 멀어지려고 하니 내가 오죽 답답해?”

그가 창문 너머를 보며 추억에 잠기듯 말하니, 아내는 얼굴이 조금 빨개지더니 부끄러운 듯 거의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적 얘기를 꺼내는 거야…….”

“아무튼 그래서 내가 대화 좀 해봐야 되겠다, 이거지.”

9
이번 화 신고 2018-03-04 21:56 | 조회 : 1,606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내일은 월요일이 아니라고 토요일이라고 일요일이라고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