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추격전

퇴근 시간이 되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직원들은 갑작스런 비에 당황하기도 하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몇 명은 회사 내에 비치된 우산을 들고 갔고, 전화를 해서 가족이나 애인을 부르는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차를 끌고 출퇴근하는 사람들은 흔쾌히 주변 지인들을 태워 주기도 했다.

강 비서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퇴근했을 때, 차 키와 가방을 가지고 혼자 휴게실로 걸어갔다.

민운은 아직도 그곳에서 깊게 잠들어 있었다.

‘이건 뭐 시체도 아니고…….’

숨만 안 쉬었으면 정말 죽은 사람인 줄 알았을 것이다.

강 비서는 이제 집에 가야 하니 그를 흔들어 깨워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나 아직 일 많은데.”

“내일 해.”

그는 아직 비몽사몽이었다.

“내일 회의 아니야?”

“회의를 하루 종일 하냐?”

“……그렇네.”

민운은 눈꺼풀이 한결 가벼워진 건지, 생수를 조금 들이키고 창문 너머로 비가 하염없이 쏟아지는 것을 구경했다.

그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그 모습을 본 강 비서는 그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 법도 하여 중얼거렸다.

“……네 상태를 보니 회의는 미뤄야 할 것 같다.”

“됐어, 할 수 있어.”

“저거 진짜 똥고집…….”

강 비서는 진저리가 난다는 듯 짜증과 답답함이 섞인 말투였다.

민운은 그가 잔소리를 하든 짜증을 내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멍한 눈빛으로 오로지 창 밖만 내다 볼 뿐이었다.

“……?”

그러다가 갑자기 눈빛이 살아나더니, 앞이 잘 안보이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가 다시 뜨고, 더 찌푸리면서 저 멀리서 빗속에 걸어가는 사람을 유심히 봤다.

그리고 안전띠를 풀면서 강 비서에게 말을 걸었다.

“형, 잠깐만.”

“왜?”

“차 좀 세워봐.”

“뭔데, 또.”

그는 바닥에 있던 우산을 집어 들고, 차가 멈추면 곧장 문을 열고 나가기 위해 문고리까지 잡고 있었다.

“저기 연우 가는 거 안 보여?”

“네가 헛것을 본 거겠지.”

강 비서는 이 놈이 드디어 미쳤구나, 생각하고 그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여 속도를 더 올렸다.

“아, 연우 맞다니까! 좀 멈춰봐!”

“아니, 너가 피곤해서 헛것 본 거야. 집 다 왔으니까 가서 잠이나 자라고.”

“거 진짜, 잘못 본 거 아니라고!”

민운이 옆에서 계속 화를 내며 윽박지르니, 강 비서는 어쩔 수 없이 차를 멈췄다.

하지만 이미 너무 거리가 벌어진 탓에 바로 뛰어간다고 해도 연우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연우 놓치면 형 가만 안 둬!”

민운은 우산을 들고 뛰쳐 나가며 소리쳤다.

저렇게 뛰어가느라 어차피 비를 맞을 거면 대체 왜 우산을 가져간 건지, 강 비서는 백미러로 그를 보며 ‘어휴 내 신세야.’ 하며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 다시 운전대를 잡고 혼자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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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을 촉촉하게 적신 빗물에 민운이 발을 옮길 때마다 찰박거리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그는 거리가 아무리 멀어졌어도 반드시 연우를 만나리라, 이 일념 하나로 비에 몸이 젖든 신발에 진흙탕이 묻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뛰었다.

다행히 오래 걸리지 않아, 차 안에서 봤던 그 뒷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민운은 가슴이 벅차 오르는 기쁨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연우야!”

“……!”

연우는 누군가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무심코 뒤를 돌아보다가, 민운인 것을 알아채고 겁먹은 표정을 지으며 주춤대더니, 앞으로 쌩- 도망가버렸다.

“야! 잠깐……!”

민운은 가까이 가기도 전에 이름을 먼저 부른 것을 후회했다.

그는 연우의 뒤를 바짝 쫓아가려 했지만 금새 놓치고 말았다.

‘아, 역시 발걸음 빠르네.’

민운은 연우를 놓친 곳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탐색했다.

‘연우라면…….’

민운은 왼쪽 오르막길 위에 쭉 골목길이 형성되어 있는 것을 봤다.

그는 골목에 조금 진입했다.

그가 서있는 곳부터 오르막길 제일 위까지의 거리는 그리 먼 편은 아니었다.

발이 빠른 연우라면 이미 통과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민운은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

그는 우산을 접고, 발소리도 조심하면서 골목길에 들어선 건물 사이사이를 확인했다.

“찾았다……!”

그리고 어두운 골목 속에서 반짝거리는 것을 보더니, 확 들어가 연우를 찾아냈다.

“힉!”

살짝 불투명한 하얀 비닐 우산을 쓰고 있던 연우는 화들짝 놀라더니, 재빠르게 다시 민운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도망쳤다.

“쪼, 쫓아 오지마!”

“그럴 거였으면 애초에 너 안 찾았어!”

민운도 연우가 다시 도망가자 뒤를 쫓았으나, 그를 쫓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둘 사이의 거리가 멀어져 갔다.

연우는 골목 이리저리 쏜살같이 도망치다가 가파른 오르막길을 발견하고 그 위로 전속력으로 달려갔다.

예상했던 대로 오르막길의 중간 즈음에 도달했을 때, 두 사람의 거리는 훨씬 더 멀어졌다.

민운은 오르막길의 경사를 보니 머리가 핑 돌았다. 이런 곳을 뛰어서 올라가야 한다니, 허벅지가 터질 게 분명하다.

하지만 연우를 이대로 놓칠 수는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올라갔다.

‘아, 나 원래 이렇게 체력 약했나…….’

불현듯 앞을 보니, 연우는 이미 경사의 끝을 향하고 있었다.

이미 놓친 것 같다는 느낌이 왔다.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다고 해도 연우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는 연우를 만날 수 없을 거란 확신을 계속 하면서도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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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08 23:34 | 조회 : 1,687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민운 : 왜지...이 상황 익숙해....(데자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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