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아이갓츄

“헉, 죽겠다…….”

민운은 거의 산 정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오르막길의 끝에 와서 허리를 푹 숙여 한숨을 돌렸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갈증도 심했다.

그의 얼굴에는 빗물인지 땀인지 알 수 없는 물이 볼을 타고, 턱 끝에서 방울방울 떨어졌다.

‘……겨우 만났는데 놓치다니…….’

그는 헉헉거리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는 오른쪽 구석에 있는 아주 작은 공터에 누구든 와서 쉴 수 있는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

그곳에 어떤 사람이 드러누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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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록- 후우…….”

연우는 정자에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축 늘어져 쉬고 있었다.

“……이미 저 아래로 내려간 줄 알았는데.”

민운은 어느새 연우 앞에 와서 말했다.

그는 필요도 없었던 우산을 접어 바닥에 내팽개치고, 정자에 걸쳐 앉았다.

그리고 옆에 누워 있는 연우를 봤다.

연우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요새 운동을 안 했더니…….”

연우는 이제 좀 살만 한 듯 천천히 일어나며 말했다.

일어나서 민운을 보니, 그도 남 말 할 처지가 아니었다.

하얀 셔츠가 몽땅 젖어서 속살이 비쳐 보였다.

연우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금방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조금만 더 멀리 갔으면 내가 못 잡았을 텐데, 아깝네.”

“…….”

민운은 넥타이를 풀어 작게 뭉쳤다. 그리고 뭉친 넥타이를 두 손으로 잡고 힘껏 비트니, 꽤 많은 양의 빗물이 바닥에 떨어졌다.

연우는 물기가 쪽 빠진 넥타이를 보다가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민운이 신고 있는 구두가 많이 더러워져 있었다.

“……너 신발에 흙탕물 다 튀었어.”

연우는 그의 신발을 보고 피식 웃으며 말했다.

민운도 한 손에 쥐고 있던 검은 뭉텅이를 연우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넌 밑에 외투 흘리고 갔더라.”

“아, 언제…….”

외투를 받아 보니 아주 옅게 푸른 빛이 났다.

남색 가디건인데 비에 젖어 검게 보이는 것 같다.

“하여간 칠칠 맞지 못하다니까.”

“그렇네.”

연우는 뭐가 그리 급해서 외투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뛰었던 건지 조금 웃음이 났다.

연우는 외투를 옆에 놓으면서 무의식적으로 민운의 얼굴을 봤다.

민운은 아무 말 없이 아주 그리운 눈빛으로 연우를 보고 있었다.

“아…….”

연우는 그제서야 눈치를 챘다.

이렇게 사소한 대화를 하던 게 얼마 만이던가.

아주 잠깐이지만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방금 전 두 사람이 왜 그렇게 뛰었는 지도 까먹고 있었다.

연우는 그와 오랜만에 보는 걸 알아차리자 마자 어색함을 느꼈다.

하지만 예전처럼 눈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와 눈이 마주친 이후로 몸이 굳은 것 같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누가 먼저 말하지도 않았는데 마음이 통한 것처럼 동시에 몸을 움직여 가까이 붙었다.

그리고 이마를 맞대고 머뭇거리다가 짧게 입을 맞췄다.

“…….”

그리고 다시 서로의 눈을 봤다.

연우는 자신의 볼에 손이 닿는 것이 느껴지자, 무엇에 이끌린 듯 다시 그와 입을 맞췄다.

......오랫동안 잡아 온 이성이 끊긴 듯 했다.

단순히 입을 맞추는 걸로는 만족하지 못했다.

연우는 자신도 모르게 팔을 올려 민운의 어깨를 감쌌다.

비로 인해 자신은 물론 그의 목과 얼굴도 얼음장처럼 차가웠으나 입안은 뜨거웠다.

연우는 그를 더 감싸 안았다.

가까이 붙으면 붙을수록, 비에 젖은 옷이 살에 붙어 차갑고 불쾌한 느낌이 들 법도 한데, 두 사람은 딱히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이렇게 미치도록 키스를 갈구했던 적이 있던가…….

이토록 애타는 심정으로 서로를 붙잡고 있는 건 처음인 것 같다.

“하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입술을 땠고 이성을 되찾았다.

“……!”

연우는 순식간에 얼굴이 빨개지며 민운의 어깨 위에 올려 놨던 팔을 내렸다.

이러면 안되는데, 한달 동안 연락을 안 했던 이유가 뭔데, 정을 떼기 위해 그렇게 참았는데 다 물거품이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혼란스러웠던 연우는 급하게 정자에서 일어났다.

“나, 난 가볼 게……!”

“잠깐만, 얘기 좀 해.”

민운이 그렇게 도망치는 걸 가만 둘 리가 없었다.

그는 연우를 잡아서 다시 앉혔다.

연우는 그의 힘에 못 당해 앉긴 했지만, 대화를 하고 싶어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얼굴에 달아오른 열도 식을 줄을 몰랐다.

“아직도 우리가 헤어지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

“다시 내 옆에 있어주면 안돼?”

그와 함께 했던 시간들이 마구 떠올랐다.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던 시간들이었지만, 그걸 붙잡고 있자니 본인이 너무 힘들었다.

“……안돼. 그러면…….”

“왜, 대체 왜?”

“나는 이런 건 원하지 않아.”

그의 얼굴을 보면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연우는 고개를 반대쪽으로 돌려 차분히 말했다.

그러자 민운은 얼굴을 찌푸렸다.

“난 너 없는 한 달 동안 너무 힘들었어. 정말 나를 위해서 이러는 게 맞아?

“같이 있으면 당장은 좋을 지 몰라도…….”

“왜 쓸데없이 그런 먼 미래를 생각하는 거야? 그때의 일은 그때 생각해도 늦지 않아. 난 지금 당장이 중요해.”

민운은 연우의 눈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리고 그의 손을 꼭 잡았다.

“너도 내가 싫은 게 아니잖아.”

“…….”

“서로 좋아하는데 왜 멀어지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어.”

연우는 금방 또 눈을 피해버렸다. 머리가 너무 혼란스러워 복잡했다. 빨리 자리를 뜨고 싶었다.

“나도 분명 이러다가 언젠가는 지치게 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난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은 싫단 말이야.”

그가 의기소침하게 말하니, 연우는 망설이는 눈빛으로 그를 봤다.

“넌 너 자신과 나를 위해서, 라고 하지만 정작 난 이런 상황을 원하지 않았는 걸.”

하지만 곧 자신의 손을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떼어 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났다.

“그래도……난 이게 옳다고 생각해.”

그는 발걸음을 옮겼다.

민운은 점점 멀어지는 그에게 말했다.

“……정말 나를 위한다면, 다시 돌아와줘.”

“난 계속 기다릴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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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11 22:12 | 조회 : 1,682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물에 젖어서 완전 섹시하게 분위기 잡고 있는 두 사람을 상상하며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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