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닮았어

“다녀왔습니다.”

현관문이 열리면서 연우의 목소리가 들리자, 엄마는 금방 현관 앞으로 나와 봤다.

연우는 폭우를 맞은 듯 머리에서부터 발 끝까지 푹 젖어 있었다.

“아니, 연우야! 왜 이렇게 홀딱 젖어서 왔어?!”

“……좀 뛰다가…….”

엄마는 기겁을 하며 얼른 화장실에서 커다란 타올을 가져와 연우의 어깨에 걸쳐줬다.

“몸살 나면 어떡해! 빨리 가서 따뜻한 물로 씻고 와. 얼른!”

연우는 곧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몸을 씻고 나왔다.

밖으로 나와 부엌으로 가보니 식탁 위에 따뜻한 꿀물이 내어져 있었다.

연우는 자리에 앉아 따뜻하게 데워진 머그잔을 두 손으로 잡았다.

“괜찮니? 춥진 않고?”

“네, 괜찮아요.”

“오늘 옷 따뜻하게 입고 자. 어떡하니, 정말…….”

엄마는 혹시라도 젖은 머리카락 때문에 추울까 봐 헤어 드라이기를 가져와 연우의 머리를 말려줬다.

“외투도 다 젖어 있고……밖에서 뭐 하다 온 거니?”

“……아무것도요.”

아빠는 맞은편에 앉아 가만히 신문을 보는 척하며, 연우를 봤다.

말로는 아무것도 안 했다면서, 표정이 아주 심란한 게 분명 무슨 일이 있어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이 바로 대화를 해야 할 날인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연우가 방 안으로 들어갈 때, 그 뒤를 따라 같이 들어왔다.

“연우야.”

“네?”

“아빠랑 얘기 좀 할 까?”

둘은 침대 위에 나란히 앉았다.

“그 아이 만나고 왔지?”

“……네.”

“한달 만에 만나니 어땠어?”

연우는 침울한 표정이었다.

밖에서 있었던 일들이 모두 연상되었다. 마지막에 자리를 벗어나려 먼저 길을 나섰을 때, 홀로 남겨진 민운의 모습이 그려졌다.

그가 집까지 잘 들어갔을 지 걱정이 되었다.

“……너무 기쁘고, 또 슬펐어요.”

왠지 몸이 으슬으슬 추운 게 몸살이 올 것 같았다.

안 그래도 얼굴이 피곤해 보이던데 민운도 몸살에 걸려 고생하지 않을 지 걱정이 된다.

“사람이 어떻게 그리 좋을 까요. 날 계속 기다리겠대요. 이렇게 자신감 없고 폐만 끼치고 다니면서 매사 부정적인 애를.”

집도 가까운데 같이 걸어올 걸 그랬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랬다가 자신이 감정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으니 따로 돌아가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사실 민운이 붙잡을 때, 저도 다시 시작하고 싶었어요. 언제 또 그런 사람을 만나요. 아니, 난 이제 그 애 아니면 안돼요.”

“그런데 왜 거절했어?”

“……그러면 안되잖아요. 나 좋자고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요. 너무 이기적이잖아…….”

아빠는 그를 지긋이 바라봤다.

연우에게서 예전의 아내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는데 어쩜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는 지…….

“연우야,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까?”

어렸을 때부터 꿈꿔왔던 선생님이 되어 드디어 고등학교에 첫 발령이 났다.

그는 교무실에서 다른 선생님들과 인사를 나누다가 자신을 향해 웃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던 한 선생님에게 첫눈에 반해버렸다.

상대방도 그와 마음이 같았는지, 두 사람은 금방 친해지고 사랑에 빠져 사귄 지 2년도 되지 않았을 때 결혼까지 약속했다.

첫째 아이를 가졌을 때,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들은 새로 만나게 될 소중한 가족을 위해 갖은 노력을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세상도 보지 못한 채 죽어버렸고, 엄마 또한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아기를 잃은 슬픔에 빠진 엄마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아빠도 슬퍼하는 엄마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어느 날, 네 엄마가 이혼을 하자고 말하더라고.”

아빠는 아이를 원했다. 연애하면서도 아이를 두어 명을 낳아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늘 말하곤 했다.

엄마도 그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고 본인 또한 그 미래를 꿈꿔왔다.

하지만 그걸 이룰 수 없다는 사실에 엄마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자신은 이제 아이를 못 낳으니 나보고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 하는 거 있지.”

이혼을 하자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은 굉장히 슬퍼 보였다.

이게 아빠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기도 못 낳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자신 때문에 힘들어 할 그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물론 내가 아이를 정말 원했던 건 맞았지만, 그렇게 까지 하고 싶진 않아. 난 네 엄마를 사랑하니까.”

“…….”

“내가 이혼은 절대 못한다고 하니, 네 엄마는 너와 똑같이 말했어. 나중에 가면 후회할 지도 모른다고. 자기 때문에 힘들어질 거라고.”

아이를 낳지 못한다면 입양을 하자, 그것도 안된다면 반려동물을 키우자 하며 벌써 17년이 흘렀다.

하지만 실제로 그 말을 실현한 지는 아직 3년도 채 되지 않은 것이다.

“자, 연우야.”

아빠는 그가 이 이야기를 듣고 무언가를 깨닫기를 바라며 물었다.

“우리가 불행해 보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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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8-03-17 18:31 | 조회 : 1,556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엄마 : ....? (엿듣는 중이지만 잘 안들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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