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너로 물들이다

"왁! 씨!"


핸드폰으로 맞춰놓은 알람만 십수개, 그것도 모자랄까 알람시계 몇 대를 머리맡에 두고 잤건만 안은 그것들을 깔끔히 무시한 채 숙면을 취했다.

어쩌다 운 좋게 침대에서 떨어져 부랴부랴 얼굴에 물 묻히고, 거울을 보면서 머리 좀 만지고, 입에 사탕을 무니 남은 시간, 3분.

안은 작게 욕을 내뱉으며 옷장 속에 고이 썩혀놓을 생각이었던 교복을 거칠게 잡아빼고는 대충 끼어입었다.

단추는 가면서 끼우고, 신발을 신고 빠르게 뛰쳐나가니 등교길 학생들의 대열에 안전히 낄 수 있었다.

좋아. 이번엔 제대로 들어갈 수 있겠다. 입가에 승리의 미소를 잔뜩 머금은 채 안은 교문에 다다랐다. 그는 학주를 마주하기 전 마지막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아! 넥타이!"


부지런히 움직이던 발걸음을 멈췄다. 학주가 고개를 이쪽으로 돌리자 안은 반사적으로 뒤로 몸을 돌렸다.

학주는 익숙한 뒤통수를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했으나 이내 다른 학생들로 눈길을 돌렸다.

이대로라면 지각은 아니어도 복장 불량에 걸릴 것이 뻔했다. 그렇다면 빼도박도 못하고 안을 기다리는 것은 아침 교문 청소.

이 안은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눈알을 뒹굴뒹굴 굴렸다. 그렇지만 이렇다할 타개책은 떠오르지를 않고.

이대로 서 있자니 지각으로 잡히고. 집을 뒤져도 어디에 있을지도 모르는데 돌아가기엔 시간이 없고. 지나가는 사람한테 넥타이를 빌려달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때 안은 멀리서 걸어오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훤칠한 키에 잘난 걸음걸이. 얼굴은 멀리서 봐도 잘생겼음을 알 수 있을 분위기를 자아해내는 그를 자세히 바라보니 어제 그 사람이었다.

피어싱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학주가 혼내기는 커녕 그냥 보내준 사람. 역시 사람은 키 크고 잘생겨야 학주가 만만하게 안 보는건가, 하고 안에게 큰 깨달음을 준 사람. 그리고 그 사람은 한결이었다.

안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한결에게 다가갔다. 그러나 안이 다가오는 것을 먼저 알아챈 것은 한결의 옆에서 걷던 도현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들! 저는 이, 안, 이라고 합니다."


굳이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며 자기소개를 하는 이 안의 모습에 도현은 푸하핫, 웃음을 터뜨렸다. 한결은 황당한 표정으로 이 안을 내려다보았다.


"아, 박한결 선배님이시군요. 선배님. 혹시 그 넥타이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넥타이?"


안이 가리키는 넥타이는 다름아닌 한결이 오늘 대충 하고 온 넥타이였다. 한결이 손으로 가리키자 고개를 끄덕이며 반짝이는 눈빛으로 달라고 하는 안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야, 너 되게 재밌는 친구구나? 우리 친하게 지내자."


도현은 옆에서 계속 웃으면서 안에게 치근댔다. 안은 시계를 보더니 마음이 급해졌다. 잠깐 망설이나 싶더니 한결의 넥타이로 손을 뻗었다. 그대로 잡아채자 넥타이가 한결의 목덜미에서 빠져나와 안의 손으로 들어왔다.


"제가 지금 급해서요. 잠깐 빌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넥타이를 손에 넣은 안은 잽싸게 달려갔다. 어안이 벙벙해서 벙쪄있는 한결과 재밌다며 옆에서 낄낄대는 도현을 뒤로 한 채 안은 총총 걸음으로 달려가며 넥타이를 맸다.?


"야. 한결아. 쟤 너무 웃긴데?"

"허.."


넥타이가 빠져나간 자리에 셔츠 단추를 몇 개 풀며 걷는 한결의 시선의 끝에는 안의 뒷모습이 있었다.

한편 뒷일은 생각하지 않는 우리의 하루살이 안은 학주에게 당당히 걸어나갔다. 넥타이도 있겠다. 교복도 잘 챙겨 입었겠다. 지각도 하지 않았겠다. 두려울 게 없다 이거야.


"선생님!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입니다."

"얼씨구? 이 안 네가 무슨 일이냐?"

"하하. 그러게 말이에요. 오늘 아침에 해가 서쪽에서 뜨는 거 못 보셨나봐요?"

"그만 하고 얼른 들어가."


웬일인지 제대로 복장을 갖춰 입고 등교한 이 안의 모습에 조금 놀랐지만, 학주는 여느 때처럼 파일로 머리를 내리치며 꾸짖었다.


"너네 학생으로서 복장을 제대로 갖추어야지. 그게 뭐니."


어제까지만해도 이 대열에서 소란스럽게 하던 장본인이 오늘 한 번 제대로 입고 온 주제에 훈계질이었다. 그런 이 안의 모습이란 참으로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장점이라면 장점이고, 매력이라면 매력이었다.

기어코 학주에게 꿀밤 한 대를 더 얻어맞고서야 교실로 들어가는 이 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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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7 19:22 | 조회 : 1,053 목록
작가의 말
이잎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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