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 너로 물들이다


안이 반으로 올라오자 언제 온 것인지 옆자리인 여울이 자리에 앉아 떠들고 있었다. 안은 아랑곳 않고 갑갑한 넥타이를 풀어제끼며 자리에 앉았다.


"뭐야, 이 안. 웬 넥타이?"

"아침에 학주한테 잡혀서 갈굼당할 바에야 갑갑해도 잠깐 하는게 낫겠다는 나의 판단."

"크큭. 결국 그 학주한테 백기 든 거야?"

"몰라. 하여간 그 영감탱이. 아주 사람을 가만히 못 둬서 안달이 난 게 분명해."


안은 가방에 넥타이를 집어 놓고서 셔츠 단추를 풀어 헤쳤다. 자리에 앉아서 곰곰히 생각해봤다.

박한결이라는 이름을. 그 잘생긴 선배의 얼굴을. 옆에 있던 자신이 재밌다며 계속 웃고 있던 선배를.

분명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 느낌이 들었다.


"이 안."


다른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구설수로 들은 것인지 아니면 여울이 자신에게 말해줬던 것인지 그것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으나 분명히 들어봤다.


"이 안!"


몇 번이나 불렀으나 대답이 없는 안이 괘씸해서 여울은 이 안의 이마를 한 대 가볍게 탁, 하고 쳤다. 그러자 정신을 차린 이 안. 여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바라봤다.


"왜?"

"답지않게 왜 멍 때리고 그래."

"..야. 너 박한결 선배 알아?"

"박한결 선배? 당연히 알지. 완전 잘생겼잖아. 여자애들 사이에서는 소문이 자자하지."


안은 그래서 들어본 건가 싶었다. 하긴, 그 정도 외모라면 우리 학교 여자들이 가만히 놓아둘 리가 없지.


"근데, 그 선배 일진이라는 소문도 있어. 학교도 잘 안 오잖아. 거기다 집도 잘 산다던데. 근데 갑자기 왜?"

"어? 아니 그냥.."

"그냥이 어디있어. 뭔가 엮인 것 같으니까 궁금해지고 그런거지. 야, 내가 인생 선배로서 조언하는데. 아니 뗀 굴뚝에 연기 안 난다고, 소문은 괜히 나는 게 아니야."

"3개월 먼저 태어난 걸로 인생 선배는 무슨."


여자의 직감인가, 예리한 추리력인가. 여울은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하지만 덕분에 이 안은 박한결이라는 선배에 대해서 조금은 궁금해졌다. 자고로 소문으로 둘러싸인 인물은 자신이 직접 파헤쳐보는 게 묘미가 있으니까.

그나저나 이 넥타이를 어떻게 돌려준담. 수업은 시작했으나 안은 넥타이 생각에 집중을 못하고 딴 생각으로 낙서를 끄적이며 시간을 죽였다.


***


"야.. 너 뭐하냐."

"어.."


급식실에서 안이 밥알 한 톨씩 집어 깨작이다가 주변에 사람이 지나가는 것 같으면 미어캣처럼 고개를 치켜들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놈이 뭐하는 건가 싶어서 지켜보고 있노라니, 국 좀 떠 먹는가 싶으면 문 열고 급식실을 들어오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반찬을 집다가 말고 배식받는 사람을 쳐다본다.


"야. 이 안! 밥 처먹으러 왔으면 곱게 처먹어. 뭐하냐고."

"어어.."


어쩌려고 급식실은 가자고 해서 찬 바람 휭휭 들어오는 문가 자리에 앉아 먹는 사람 불편하게 이러고 있는지. 여울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여울의 따가운 눈총에도 아랑곳 하지 않는 안은 열심히 큰 두 눈으로 사람들을 훑었다.

이 안이 수업시간동안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굴려 생각한, 넥타이를 돌려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만날 곳이 여기 급식실이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 아주 완벽한 시나리오일터인데, 코빼기도 보이지않는다. 그렇게 훤칠한 외모면 눈에 들어올 만도 한데.


"하.. 그래서. 누구 찾는데?"

"아니? 나 다 먹었는데?"

"무슨 소리 하는 거야. 드디어 이 새끼가 미친 건가. 하긴, 급식 맛 없다면서 한 번도 안 먹으러 갔던 놈이 갑자기 급식실 가자고 할 때부터 이상했어."

"그렇지? 그러니까 급식을 안 먹으러 온 거겠지?."


미친놈.

여울은 혼자서 읊조리며 고개를 저었다. 야무지게 담아 온 밥은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채 몇 분 째 두리번대고만 있는 안을 보더니 결국 체념하기로 한 듯 했다.

얼굴은 멀쩡하면서 하는 짓은 어디 나사가 풀려도 아주 중요한 나사가 풀린 것이 분명한 이 새끼를 누가 데려가려나. 오늘도 진심 어린 걱정을 하는 홍여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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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19-02-07 19:25 | 조회 : 1,335 목록
작가의 말
이잎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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