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힐링


한참을 빛의 품에 안겨있던 영우는 정신이 들자 스물스물
쪽팔림이 몰려왔다.

...고마운데... 분명 고마운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울음도 그쳤고 시간도 늦었으니 우리는 이제 그만
헤어져야 할 시간 다음에 또 만ㄴ...아니 이게 아니라
솔직히 계속 이러고 있는 건 좀 그렇잖아?
오늘 처음 만났다고.
오늘 뭔 일이 너무 많아서 금방 친해지긴 했다지만 그래도
오늘 처음 본 사이잖아.
그런데 너무 막 오랫동안 봐온 사이처럼 이러고 있는 건 좀...
게다가 사람마다 퍼스널 스페이스 라는 게 있는데
혹시 모르잖아 얘가 싫은데도 나 때문에 억지로 이러고
있는 거일 수도 있고 진짜 미치겠네 젠장.

영우가 자연스럽게 빛의 품에서 벗어날 방법에 대해
빠른 속도로 생각을 하느라 살짝 멍해져 있던 사이
빛은 영우를 품에서 때어냈다.

빛 : 이제 쌤 많이 진정된거 같네요.

빛이 자연스럽게 자신과 떨어지자 영우는 살짝 허무했다.

나 뭐 때문에 이렇게 고민 한거지....

영우 : 아... 어...덕분에...진정된거 같아.

빛은 그 말이 기분 좋은 듯 웃으며 영우의 손을 자신의
머리 위로 가져가며 말했다.

빛 : 그럼 칭찬해 주세요. 쓰담쓰담 해줘.

영우 : 어..어..? 그, 그래...

얼떨결에 빛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영우는 생각했다.

....뭐랄까... 살짝...개..같다..?

순간적으로 든 생각에 영우는 움찔했다.

미묘한 단어선택에 의도한 건 아니지만 뭔가 욕을 한 기분이라
왠지 미안해서 생각을 고쳤다.

개 말고, 강아지...는 아니고...그래.
대형견.
음. 이 표현 좋네.

영우의 쓰담쓰담을 받으며 기분 좋다는 듯이 눈을 감고서
헤실헤실 웃고 있는 빛의 모습이 정말 주인의 말을 잘 따르는
대형견 같았다.

.....나름 귀엽네.

빛 : 저 귀엽죠.

갑작스런 빛의 질문에 영우는 자신도 모르게 대답했다.

영우 : 응. 귀엽네.

잠깐.

영우 : 어, 뭐. 뭐라고?

잠깐만 이건 좀 아니잖아 아니 진짜 갑자기 이러면 반칙
아닌가요.

빛 : ㅎㅎ ..쌤이 나 귀엽데.

아까보다도 더 신이 난 듯 눈은 감고있지만 입꼬리는 잔뜩
올라간 빛의 얼굴과는 달리 영우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멈췄다.

영우의 손이 멈추자 빛은 눈을 뜨고 영우의 손을 스스로
움직이며 말했다.

빛 : 뭐예요.. 갑자기 멈추고. 계속 쓰다듬어 줘요.

빛의 말에 영우는 당황했지만 다시 빛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한참을 쓰다듬다가 빛이 작게 중얼거렸다.

빛 : 쌤이 쓰다듬어 주는 거 기분좋다.

작은 목소리 였지만 주변이 조용해서 영우는 빛이 중얼거린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빛은 눈을 살짝 뜨고 영우의 눈을 보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빛 : 힐링되는 거 같아요.

빛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영우에게는 두근거렸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부끄러웠다.

그런 영우의 마음을 알고 그러는 건지 모르고 그러는 건지
알 수는 없지만 영우는 빛이 일부러 그러는 걸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빛이 영우의 심장에 무리를 줘서 죽여버리려는 걸지도 모른다는 이상한 생각까지도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얼마가지 않아 확신이 되었다.

빛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던 영우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웃었다.

빛 : 이제, 힐링 끝.

영우 : 아...그래..

왠지 모를 아쉬움과 빛의 입술이 닿았다 떨어진 손바닥이
뜨거워지는 느낌에 영우는 기분이 이상해졌다.

아직까지도 부들부들한 머리카락의 감촉이 손에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빛은 약간의 아쉬움을 드러낸 영우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빛 : 저도 아쉽긴 한데, 내일도 있으니까.
내일도 저 칭찬해 줄 일 생기면 오늘처럼 쓰담쓰담 해줘요.

영우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는 빛의 모습에 영우는 속으로
살짝 웃었다.

니가 이렇게 간절하게 쳐다보는데 내가 어떻게 거절을 해.

영우 : ...그래.

영우의 대답에 빛은 웃으며 물었다.

빛 : 쌤, 그럼 내일 언제 출근해요?

영우 : 나? 난...음... 7시 30분 정도...?

빛은 영우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빛 : 출발이요, 도착이요?

영우 : 도, 도착.

빛: 헐...대박... 너무 일찍 출근하는 거 아니예요?

뭔가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는 빛의 모습에 영우는 의아했다.

영우 : 그 정도가 좋아. 사람도 적당하고. 출근하면 조용하고.

빛은 무언가 결심한듯 영우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말했다.

빛 : 그럼, 저도 그 시간에 등교할게요!

영우는 빛의 말에 당황했다.

영우 : 어...? 니, 니가 왜..?

빛 : 쌤이랑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요.

영우 : 너 그러려면 여기서 6시 정도에는 출발해야 할걸?
그러려면 5시 정도에는 일어나야 할 거고.. 그리고 또
일찍 일어나면 평소보다 피곤할텐데..?

빛은 그런건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빛 : 쌤과의 시간을 위한 일인데, 그런게 상관이 있나요.

영우 : ..얘기만 들으면 사귀는 줄 알겠다.

영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말하자 빛의 귀가
약간 빨갛게 달아올랐다.

영우는 별 생각없이 말했던 거라 빛의 귀가 빨개진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영우 : 너 일찍 등교할거면 내가 태워줄게.
여기 택시 잘 안잡히는 편 이고 니 말대로면, 이렇게 하면
나랑 더 오래 있을 수 있으니까. 괜찮지?

빛 :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엄청 좋은데요.

빛의 말에 영우는 가볍게 빛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웃었다.

영우 : 벌써 9시 30분이다. 슬슬 가야하지 않아?

빛 : 아, 네. 그렇죠. 시간 참 빠르네요.

영우의 차에서 내려 운전석의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빛의
행동에 혹시 두고 간 물건이 있나 싶어 창문을 내리자
빛이 영우의 양쪽 뺨을 감싸듯 붙잡고 눈에 가볍에 키스했다.

갑작스러운 빛의 행동에 영우의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영우 : 너, 너어...진짜...!

빛 : 그럼, 내일 아침에 여기서 봐요.

영우는 아무 미련 없다는 듯이 뒤돌아 보지도 않고
자신의 집으로 가는 빛이 얄미웠다.

빛이 돌아간 것을 보다 빛이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제서야
자신의 집으로 출발한 영우는 가는 내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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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화 신고 2020-04-24 16:42 | 조회 : 1,430 목록
작가의 말
platypus

뜨개질로 목도리 만들기 배웠는데 넝마를 만들어서 때려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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