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nothing

“아, 추워.”

민운은 연우와 헤어진 후 무슨 생각인지 집까지 걸어서 왔다. 집에 도착하기까지 대략 30분이 걸렸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신발장은 물바다가 되었다.

아줌마는 헐레벌떡 수건을 가져오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아니, 대체 뭘 하다 온 거에요?!”

“그냥, 뭐……산책?”

“비 오는 날에 무슨 산책이야! 강 비서님께 다 들었어요! 몸은 사리면서 행동 해야죠!”

“아하하……비 조금 맞았다고 안 죽어요.”

“어휴, 안 그래도 요즘 몸 상태도 안 좋은데 비까지 맞았으니 걱정하는 거죠!”

민운은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아줌마의 잔소리를 피해 곧장 계단을 올라갔다.

2층으로 올라가니 한때 연우가 지냈던 방에서 아이리스가 그의 발소리를 듣고 나왔다.

“연우오빠 만났어?”

“왜?”

“보고싶어서. 안 돌아올 거래?”

“……모르겠어.”

민운은 동생을 뒤로 한 채, 몸을 씻기 위해 화장실로 향했다. 아이리스는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인지 그의 뒤에서 칭얼거렸다.

“이씨……난 연우오빠가 좋단 말이야! 무릎 꿇고 빌어서라도 다시 데려와!”

“그렇게 해서 됐으면 진작에 데려왔지…….”

정말로 그렇게 해서 돌아와 준다면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했을 텐데.

-----

“…….”

다시 연우의 방 안이다.

연우는 아직 아빠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누가 봐도 분명히 알 수 있는 이 가장 쉬운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지금까지 그가 옳다고 생각하여 해온 일을 모두 부정해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아빠는 그가 답을 알고 있음에도 입을 꾹 다물고 있자, 조금 더 직설적이게 물었다.

“넌 네가 우리에게 폐만 끼친다고 생각해서 이 집도 나가버릴 생각이니?”

“아…….”

드디어 연우가 눈에 띄게 보일 정도로 반응을 보였다.

울 것 같이 촉촉한 눈망울과 안절부절 못하는 그의 표정은 정곡을 찌른 것 같기도 하고, 억울한 것 같기도 했다.

“아, 그……가끔은……그런 생각도 하긴 하지만……정말 저는 매일 도움만 받고 사니까…….”

아빠는 가만히 듣더니, 조금 한숨을 쉬었다.

“……네가 우리 가족이 된 지 벌써 3년이 다 되어 가.”

“…….”

“3년이 돌이켜보면 짧긴 짧은 시간이지만, 우린 널 단순히 입양아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정말 우리의 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연우는 그가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해주려는 건지 눈치를 채고 가슴이 울컥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피가 섞이지 않았더라도 우린 한 가족이야. 그렇게 하나하나 다 마음에 둘 필요 없어.”

이들을 만난 건 최고의 행운이다.

정말로 부모님이 살아 돌아오신 것처럼 마음이 뭉클해지고 따뜻해지는 말씀을 해주시니 말이다.

무슨 잘못을 해도, 심지어는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밝혀도 끝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 다독이고 응원해줬던 그 부모님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네 엄마가 아플 때 물론 나도 힘들고 슬펐어. 하지만 그 순간은 그 순간대로 내겐 소중한 기억이야. 나는 내 도움으로 우리 가족이 슬픔을 떨쳐낼 수 있다면 그걸로 좋아. 그걸로 된 거야.”

결국엔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그 애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도요……?”

연우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물었다.

“넌 네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한번 더 생각해봐.”

아빠는 연우의 손을 꼭 잡아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라는 건 없어.”

7
이번 화 신고 2018-03-18 22:08 | 조회 : 1,714 목록
작가의 말
로렐라이

엄마 : (여전히 안들림)

후원할캐시
12시간 내 캐시 : 5,135
이미지 첨부

비밀메시지 : 작가님만 메시지를 볼 수 있습니다.

익명후원 : 독자와 작가에게 아이디를 노출 하지 않습니다.

※후원수수료는 현재 0%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