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록-”
“뭐야, 감기?”
아침부터 머리가 핑 돌더니, 기침까지 도진 것 같다.
“어……그런 가봐.”
집에 있을 때는 나름 괜찮은 것 같았는데, 회사에 출근을 하니 인후통도 느껴지고 몸에서 열도 난다.
회의가 시작하기까지는 약 15분이 남았고, 이제 와서 취소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다.
“열도 나는 것 같은데?”
“음…….”
강 비서는 그의 안색을 살폈다.
열 때문에 얼굴이 조금 붉어진 것 같고, 눈에 피로도 많이 쌓였다.
“회의 가능해?”
“응, 별로 아프진 않아.”
“무리하지 말고, 회의 중간에 쉬는 시간 만들던가…….”
“알았어. 가자.”
10시 30분, 회의가 시작됐다.
꽤 큰 회의실 안에 민운을 중심으로 바로 오른쪽에는 강 비서가 앉았고, 양 옆으로 동그랗게 모여 각 부서에서 나온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이번 회의 건은 프랑스의 한 의류 브랜드에서 제안한 협력 활동을 주제로 하기 때문에 디자인 팀에서 온 낯이 익은 사람들도 보였다.
“……그렇다면 모두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바로 00브랜드에 수락 메일을 보내겠습니다.”
회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어 제안을 받아들여 팀을 선발하여 프랑스로 해외출장을 가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리고 더 자세한 내용에 대해 상의하기 위한 이야기에 들어섰다.
디자인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프레젠테이션을 띄어 열연을 하고 있을 때, 강 비서는 그것에 집중을 해야 하는 데도 자꾸만 민운에게 시선이 갔다.
‘저거 진짜 괜찮은 거야……?’
민운은 앞 스크린에 띄운 화면을 보고 있긴 한 것 같은데 집중을 하고 있는 건지, 멍하니 눈만 꿈벅거리고 있는 건지, 눈을 뜨고 자고 있는 건지, 옆에선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한 5분 정도가 지나, 디자인팀장의 의견에 대해 다른 사람들도 하나 둘 그에 대한 자신의 전반적인 생각을 표현했다.
“저는 전체적으로 모두 동의합니다. 괜찮은 생각이에요.”
기획팀장은 만족하는 듯 했다.
“저는 너무 전통만을 고사하는 것은 이목을 잘 끌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만, 사장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홍보팀장은 다른 의견을 내며 민운을 봤다.
그의 생각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민운은 그의 질문을 듣지 못한 건지, 계속 책상에 놓여있는 인쇄물만 보고 있었다.
홍보팀장은 아직까지 그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듯 다시 물었다.
“사장님, 사장님의 의견을 여쭙고 싶은데…….”
강 비서는 식은땀이 주륵 흘렀다. 그는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홍보팀장은 이젠 그가 일부러 자신의 말을 못들은 척 하는 건지 아주 당황한 모습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민운에게 시선집중을 하며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기 시작했다.
“아하하, 프린트물에 집중해서 안 들리나 보네요.”
강 비서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책상 밑으로 그를 툭툭 쳤다.
“……아.”
민운은 다리에서 누군가가 건드리는 느낌이 들자,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홱 드니 현기증이 더 심해져 속까지 울렁거렸다.
그는 통증을 참고 강 비서를 봤다.
강 비서는 작게 손가락으로 홍보팀장을 가리켰고, 바로 고개를 돌려 홍보팀장과 눈을 마주쳤다.
민운이 말없이 그를 빤히 보자, 그는 가슴이 놀라 벌렁거렸다.
“에, 예……예?”
민운은 무슨 말을 했었냐는 뜻으로 본 것이었는데, 전달이 잘 되지 않은 것 같았다.
“네?”
보다 못한 강 비서가 둘 사이를 중재했다.
“홍보팀장님께서 디자인팀장님의 의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 지 물으셨습니다.”
디자인팀장은 본인 기억 상으로 회사 창립 이래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았다.
그는 평소와는 달리 멍해 보이는 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괜찮으신 가요? 안색이 안 좋아 보입니다.”
“아, 괜찮습니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죄송하지만 마지막장 두번째 대목부터 다시 한번 설명해 주시겠어요?”
민운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으며 양해를 구했다.
디자인팀장은 그의 갈수록 나빠지는 안색을 보며 회의를 중단해야 할 것 같은 직감이 들었지만, 그도 민운의 이상하리만큼 센 고집을 알기에 차라리 빠르게 끝내 버리는 게 낫다고 판단하여 어쩔 수 없이 다시 일어났다.
“네, 알겠습니다. 일단 이 도표를 보시면…….”
디자인팀장은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쿵-
모두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회의실 안은 아주 잠깐 정적이 흐르다가 곧바로 술렁이었다.
강 비서는 가장 먼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민운의 자리로 갔다.
“야! 정신차려!!!”
강 비서는 책상 위에 쓰러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펜을 집어 던지고, 어깨를 감싸고 머리를 들어올려 이마를 짚어봤다.
손이 데일 듯 이마가 불덩이였다. 강 비서는 울화통이 터졌다.
“미쳤어, 진짜! 사람이 쉴 때를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사람들 또한 혼란에 빠져 우왕좌왕했다.
나름 회의랍시고 서로 존대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그런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사장님!!”
“사장님이 돌아가셨어?!!”
“야! 살아있는 사람 죽이지 마!!!”
홍보팀장은 발을 동동 구르며 119에 전화를 했고, 이준호 부팀장은 강 비서가 그를 업는 것을 도와줬다.
“여……여기 나래 본사인데……그, 그러니까……그……!”
“아, 그럴 거면 저 바꿔요, 팀장님!!”
홍보팀장은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이라 말을 더듬거리며 신고했다. 핸드폰을 홍보 부팀장에게 넘긴 후에도 손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
“이, 일단 회의는 나중에 다시 합시다!”
강 비서는 자기보다 더 큰 덩치를 겨우 업고 기획팀장이 열어준 문 밖으로 빠져나갔고, 그 뒤를 쫓아 디자인팀장 또한 달려 나갔다.
남은 사람들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여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못했다.
눈 앞에서 사람이 쓰러진 것도 처음이었고, 본인이 다니고 있는 회사의 사장이 쓰러진 건 본 적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어쩌죠……?”
“난 사장님 언젠가 119 실려갈 줄 알았어…….”
“과로로 쓰러지는 것도 처음보고, 그게 사장이라는 사람이란 것도 처음이야.”
“회의는…….”
“일단 확실히 정해진 것만 진행을 해야 하나요……? 아니면 다시 회의를…….”
“아, 저도 잘…….”
“사장님은 괜찮겠지?”
“강철 체력이니 뭐 금방 회복할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
"사장님 깨면 이제 비서님께 죽었다."
회의실은 아무 의미 없는 대화만 오갔다.